김병호 산업에디터 겸 IT·미디어 부장 |
박삼구 회장은 지난달 28일 갑작스런 기자회견을 열어 “박찬구 석유화학 회장이 형제간 공동경영 합의를 위반하고 그룹경영의 근간을 흔들어 해임했다”고 발표했다. 대우건설 인수를 둘러싸고 불거진 박삼구-박찬구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
사실 박삼구 회장의 기자회견이 있기 전부터 금호아시아나가 유동성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이 나돌았기 때문에 이날 발표가 놀랄만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금호아시아나라고 예외가 있겠나?” 하는 국민들의 생각이 현실로 나타난 것 뿐 이었다.
금호아시아나는 지난 1984년 창업주 박인천 회장이 타계한 후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 차남 고 박정구 회장에 이어 3남인 박삼구 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수행해왔다. 4남인 박찬구 회장은 석유화학 회장으로 공동경영의 맥을 이어오다 결국 집안싸움에 휩싸이고 말았다.
이 그룹이 ‘형제의 난’에 빠진 가장 큰 이유는 대우건설 인수 실패에 따른 자금부담 때문일 것이다. 2006년 대우건설을 6조4000억원에 인수했는데 주가가 반토막 나는 바람에 풋백옵션으로 오히려 3조원 정도를 물어내야 할 처지가 됐다. 증권가에서는 그룹이 자금난에 직면했다는 소문이 여러 차례 나돌았고 박삼구 회장이 직접 이를 진화하고 나선 것이다.
그룹이 흔들리자 석유화학의 박찬구 회장 부자는 대우건설의 지주회사인 금호산업 지분을 내다 팔고 그 돈으로 자신이 회장을 맡고 있는 석유화학 지분을 18.47%로 늘렸다. 고 박정구 회장 일가와 박삼구 그룹 회장 일가는 11.76%의 지분을 갖고 있다. 형제간에 지켜지고 있는 지분 룰을 깬 것이다.
그룹에서 밀린 박찬구 회장은 자신을 해임한 이사회의 결의가 법에 위배된다며 법적으로 대응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러면서 자신이 석유화학 지분을 늘린 것은 대우건설 인수 실패로 그룹의 자금난이 심화돼 석유화학을 지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를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드는 것은 기자만이 아닐 것이다. 우선 1997년 IMF의 악몽을 잘 알고 있으면서 무리하게 대우건설을 인수한 것은 경영 실패의 한 단면이다. 욕심이 화를 부른 것이다.
금호아시아나는 갈 길이 멀다. 그룹의 덩치를 키우고 경쟁력을 강화해 글로벌화에 나서야 할 때에 형제간 분쟁논란에 휘말린 것 자체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금호아시아나가 형제들 간에 순서대로 경영권을 주고받아 모범적인 형제 경영 사례로 거론됐지만 이젠 다시 생각해야 한다. 박씨 가문이 금호아시아나를 창업했다고 해서 그룹 전체가 박씨 가문의 것은 아니다. 국민의 기업인 것이다.
이 그룹은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사세를 확장 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바뀌었다. 그룹이 아무리 어려워도 정부가 나서 도와줄 수가 없다. 이명박 정부는 특정 기업을 도와주지 않고 모든 것을 시장에 맡기기 때문에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길러야 한다.
금호아시아나는 세계에 명성을 떨치고 있는 삼성, 차근차근 글로벌화에 나서고 있는 LG, 세계 자동차 시장의 강자로 등장한 현대차그룹, 윤리경영을 바탕으로 세계화에 나선 SK, 세계적 철강기업으로 찬사를 받는 포스코 등을 참고 할 필요가 있다.
금호아시아나문제는 겉으로 보면 삼구·찬구 형제간의 지분싸움 같지만 자세히 보면 그룹 위기의 단초가 될 수도 있다. 세계 경제가 회복되고 국내 경기도 조금씩 살아나는 마당에 선순환 경영의 흐름을 타지 못하고 지분싸움을 벌이다 보면 그룹의 덩치도 키울 수 없고 글로벌 경쟁력도 키울 수 없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앞 길은 평탄치 않다. 가장 큰 문제가 대우건설 재매각을 성공시키는 것이다. 유가 상승ㆍ 여행 감소 시대에 주력사인 아시아나항공 경영을 이익구조로 바꾸는 등 그룹의 재무구조를 ‘불황 내성형’으로 탄탄하게 만드는 작업도 시급하다.
그룹 이사회가 선택한 박찬법 그룹 회장의 전문경영인체제는 ‘글로벌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새로운 도약을 이끄는 출발선이다.
세계적으로 오너 일가가 뒤에 있는 기업의 전문경영인 체제가 성공한 사례가 많지 않다. 전문경영인 회장 체제는 오너 일가가 전폭적으로 믿고, 밀어줄 때 성공할 수 있다.
금호아시아나가 오너일가와 전문경영진의 조화를 통해 성공적인 경영모델 기업으로 변신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