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한은의 때이른 어머니 역할

2009-08-07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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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소공동 한국은행 본점에는 유독 여성과 가족을 표현한 조각상이 많다. 여성 조각상은 대부분 전라이며, 가족 조각상에는 어머니가 유난히 부각됐다. 여기서 남성과 아버지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는 여성의 처녀성과 가족을 지키는 어머니를 의미하는 것으로 중앙은행 및 통화정책 결정기구로서의 한은의 보수성을 나타낸다.

경제정책 당국이 '성장'을 위한 공격적인 '남성성'을 지녔다면, 한은은 과열 경기를 '조정'하는 보수적인 '여성성'을 띄고 있는 것이다.

한은은 최근 경기 회복기에 발생할 수 있는 물가상승, 경기과열을 차단하기 위한 제한된 수준의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대표적 통화량 조절수단인 통화안정증권을 사상 최대인 168조원이나 발행하며 시중 유동성을 흡수했다. 또 환율 안정 및 외환 유동성 확보를 위해 지난해 말부터 은행에 공급했던 외환 스와프 자금 108억7000만 달러도 모두 회수했다.

최근 증시가 연일 연중 최고치를 경신하고, 외환상황 역시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찾아가고 있어 시중유동성이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판단해 자본시장 회복세에 일침을 가한 것이다.

이는 명시적 언급은 없었지만 통화 과잉공급과 인플레이션을 우려해 통화정책을 보수적인 방향으로 선회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경기가 아직 본격적으로 회복되지 않았다. 또 현재 시중에 풀린 유동성이 실물의 도화선 역할을 못하고 있어 출구전략 시행은 시기적으로 이르다.

기업의 투자심리와 민간의 소비심리가 본격적으로 살아나지 않은 상황서 시중 유동성을 거둬들였다가 10년이란 세월을 잃어버린 이웃나라 일본을 보면 섣부른 경기판단의 위험성이 쉽게 이해된다.

아직 경기를 정확히 판단하기 이른 시점에서 한은이 국가 경제의 '어머니'라는 역할모델에 매몰된다면 국가 경제가 경직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주경제=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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