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덕구 니어재단 이사장(전 산업자원부 장관)이 정부의 확장적 경기대책이 종료할 시점이라면서도 출구전략 시행 여부를 3분기 말까지 유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우리경제가 혼란스러운 상황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그는 부동산과 주가로 흐르는 유동성을 막는 동시에 고용 부진을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정부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사회에 대한 신뢰구조 복원과 함께, 위기 이후의 한국경제가 안게 될 과제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젖은 장작에 불 붙이기
정 이사장은 현재의 경제상황을 '젖은 장작에 불 붙이기'로 비유했다.
현재의 경기호전이 위기대응정책(기름)의 효과인지 펀더멘털(장작)에 불이 옮겨 붙은 결과인지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상황은 그야말로 긍정적 신호와 부정적 신호가 전선을 형성하며 맞붙어 있는 형국이다.
앞으로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선행지수는 6개월 연속 상승하고, 현재의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경기순환변동치도 4개월 연속 상승하는 등 경기의 저점 통과 증거들은 계속 나오고 있다.
광공업생산지수도 5.7% 상승하는 등 경제위기 이후 크게 떨어졌던 제조업의 활동도 개선되고 있다.
그러나 설비투자지수가 전년동월비로 계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고, 고용도 쉬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일자리는 연간 20여만명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희망근로 프로젝트의 시행에도 불구하고 취업자가 4000명 증가하는 데 그쳤다.
사상최대의 교역흑자 속에서도 해외 경제가 빠르게 되살아나지 않을 가능성이 클 것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해 설비투자와 고용을 제어하고 있다.
정 이사장은 "세계경제 내부에 난류대와 한류대가 교차하는 시점"이라며 "시간이 흐르면서 난류대가 흐름을 주도할 것이나 현재는 한류대가 더 강하다"고 평가했다.
이에 따라 한국정부의 정책적 딜레마는 더욱 커지고 있다고 정 이사장은 지적했다.
우리 경제가 신용카드 거품, 부동산 시장 거품, 7% 성장률 추진 등 역대 출구전략을 너무 늦게 써서 과잉유동성 규제를 실패한 경우가 있었는데, 이 때에 인플레이션과 금리상승으로 다시 경기침체에 빠지고 고용여건이 악화돼 재정정책의 선택 폭이 축소됐다는 것이다.
◆ 부동산·증권은 거품, 고용은 부진
특히 이번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전 세계적인 "고용 없는 경기회복"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정 이사장은 분석했다.
미국의 경우 실업률이 2010년 11%를 기록한 후 상당기간 10% 이상 유지되며 주요선진국도 같은 수준이 될 것이기 때문에, 글로벌 위기의 후속 함정으로 대규모 실업의 악순환 구조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장기적으로 고용시장과 성장률이 정상궤도에 진입하는 데는 5~6년이 걸릴 것이라는 비관론도 있다"며 "위기의 후유증으로 성장궤도 자체에 대한 불확실성이 높아, 투자나 고용 증대는 상대적으로 최소화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그는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는 한, 현 정권 기간 동안 고용측면에서는 이번 위기의 충격이 계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정 이사장은 "현 정권 집권 후반기에는 고용창출은 부진한 애로에 직면하면서도 유동성 압력에 의한 부동산 시장과 증권시장의 거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현재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한강르네상스, 한강변 전략정비구역, 동북권 르네상스, 신도시계획체계 대상부지 16개 등 각종 건축규제 완화로 서울시 개발 호재가 넘쳐날 뿐만 아니라 국토해양부가 뉴타운 내 특정지역 재개발사업 구역 지정요건을 완화한 것이 부동산 거품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그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건축규제 완화는 경기대책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추진되고 있는 것"이라며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을 고려해 본다면 건축규제 완화는 시중 유동성을 부동산 시장으로 흡수하는 촉매역할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밝혔다.
◆ "총요소생산성 향상과 위기이후 과제 대비해야"
한국의 장기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방법뿐인데, 한국의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핵심은 결국 총요소생산성에 있다는 게 정 이사장의 설명이다.
노동의 한계생산성 향상과 자본의 한계효율 증대는 단기적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중장기 대책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에 따라 경제운영 시스템의 총체적 효율성을 반영하는 총요소생산성이 경제성장의 원천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 이사장은 "하지만 정부가 '경제위기의 기회'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한국경제의 총요소생산성 제고를 위해 시스템 개혁의 절호의 기회였으나, 개혁 없이 위기가 초기에 수습되고 정부의 시스템 개혁 결단이 지연됨에 따라 그 기회를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는 "위기가 조기에 수습됨에 따라 고통 분담에 대한 합의를 이루는 것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도 그는 위기 이후의 과제로 ▲사회안전망 확충 ▲금융위기 재발방지 시스템 구축 ▲노동시장 유연성 ▲중소기업 등 취약부문의 구조조정 등 4가지를 꼽았다.
사회안전망이 정비되면, 해외로부터 경제충격이 오더라도 정치 사회적 안정을 확보하기 위해 과도한 위기대응 조치를 단행할 필요가 없어진다.
또 위기대응측면에서 대응정책의 과잉 위험을 완화하는 역할을 하면서도, 경기측면에서 자동안정장치의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또 "왜 10년 만에 다시 외생적 충격에 의한 위기 위험을 겪었는가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점검이 필요하다"며 "소규모 개방경제의 위험을 시스템적으로 낮추기 위한 제도개혁이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한국의 노사관계 현실은 새벽 3시의 깜깜함에 비유된다"며 "노사관계가 합리적인 시스템으로 탈바꿈하지 않고 노사문제가 정치문제화 하는 관행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투자증진과 노사관계 개선은 어렵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 구조조정과 관련해서는 "과도한 정부지급보증에 대한 일몰제를 운영하고 비 전략 부문에 대한 금융지원을 축소해야 하는 한편, 여신관리기준도 정상 상황으로 서둘러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김종원 기자 jjong@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