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회계기준(IFRS) 도입을 위해 예산 100억원을 준비해뒀지만 이보다 더 많이 들어갈 수도 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고 구체적인 가이드라인도 마련돼 있지 않아서 마치 맨땅에 헤딩하는 꼴이다"
"계열사가 10곳이 넘는데 몇 곳은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도 안된다. 이런 계열사까지 전부 연결제무재표로 작성한다면 효율이 너무 떨어진다."
지난 3월 '국제회계기준 도입의 영향과 기업의 대응방안'이라는 세미나에 참석한 기업 재무담당자들은 금융당국에 '불만'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기업들은 특히 글로벌 경기침체를 맞은 상황에서 회계제도 변경으로 인한 추가적인 비용 발생으로 기업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 구체적인 가이드라인과 준비시간이 부족한 점을 들어 정부에 국제회계기준 도입을 늦춰 줄 것을 금융당국에 요구했다.
국제회계기준 교육의 부족성, 회계비용 증가, 소프트웨어 미비 등 실무적인 부분의 어려움도 문제 제기했다.
하지만 금융당국 관계자는 "유럽집행위원회(EC)로부터 국제회계기준 준비 과정에 대한 모니터링을 받고 있고, 국제적 추세와 비교해도 결고 빠르다고 할 수 없다"며 2011년 도입을 '강행'할 뜻을 굽히지 않았다.
이 관계자는 "기업들이 제무재표를 작성하는 데 수작업에서 벗어나 스스로 연결제무재표로 작성하는 능력을 배양해야 한다"며 "IFRS 교육도 기본적으로 해당 당사자 기업이 열심히 노력하는 게 우선"이라며 민간 기업들의 불만의 목소리를 차단했다.
하지만 정부는 공공기관에는 국제회계기준 도입 시기를 늦춰주는 '이중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국제회계기준 적용 대상 공공기관과 도입 시기 등은 협의를 거치고 있으며 아직 최종 결정하지 않았다"고 지난 9일 밝혔다.
재정부 관계자는 "공공기관은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탁공공기관 등 규모와 성격이 다양하고 입장이 서로 달라 국제회계기준 도입시기가 기관별로 다르다"며 "2011년까지 도입이 안 되는 공공기관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전력 한국가스공사 등 상장 기관이나 해외 사업 비중이 높은 한국석유공사 등은 2011년까지 도입이 완료되지만 예산과 준비 시간이 부족한 공공기관은 도입 시기를 늦춰 주겠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공공기관에서 100% 예산을 마련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예산과 인력이 부족해서 도입을 늦춰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정부 정책에 대해 민간기업들은 "이중 잣대"라며 비판적 입장을 보였다.
민간 기업들의 예산과 인력 부족에는 눈 감았던 정부가 공공기관에는 편의를 봐주는 꼴이기 때문이다.
이름을 밝히길 꺼린 한 대기업 재무팀장은 "사실 국제회계기준 도입은 단순히 법 제도 변경사항으로 기업 수익이나 이윤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예산과 돈이 부족한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인데 공공기관이라고 봐준다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민간기업에게도 도움을 줘야 하지 않냐"고 말했다.
정부는 지난 2007년 국제회계기준 도입 로드맵을 확정해 오는 2011년까지 모든 상장기업에 도입하기로 했다.
국제회계기준이 도입되면 개별재무제표와 원가법을 적용하는 현행 회계기준이 연결재무제표와 공정가액 평가법으로 바뀌게 된다.
이에 따라 현행 회계기준에는 연결재무제표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70억원 미만 기업이나 조합, 파트너십, 특수목적회사(SPC) 등이 모두 연결 범위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가 추산하고 있는 국제회계기준 도입 비용은 상장기업의 경우 평균 6억5000만원, 금융회사는 34억원 가량이다.
김종원 기자 jjong@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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