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라이슬러가 자산매각을 통해 신속하게 회생절차를 밟겠다는 계획에 제동이 걸렸다.
월스트리트저널(WSJ)는 8일(현지시간) 미국 대법원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 대법관이 파산보호 상태인 크라이슬러가 주요 자산을 피아트 등이 대주주가 되는 신설 법인에 매각하는 방안을 한시적으로 보류토록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긴스버그 대법관은 자산매각 연기 기간을 한시적이라면서도 얼마나 유보될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테러리즘이나 선거유세 불법자금 관련 혹은 사형여부에 대해 대법원이 일시적으로 판결을 유보한 적은 있으나 자산매각과 관련해 판결을 보류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경우라고 WSJ는 전했다.
만약 긴스버그 대법관이 전체 대법관 회의에 이를 회부할 경우 자산매각 여부에 대한 결정은 수주에서 수개월이 걸릴 수도 있다.
이 경우 최종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자산매각이 유보되면서 크라이슬러의 빠른 회생이 불투명해 질 수도 있다고 WSJ는 전했다.
또 자산매각이 15일까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피아트가 협상을 폐기할 수도 있어 크라이슬러의 회생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크라이슬러의 자산 매각 문제가 대법원까지 오게 된 것은 인디애나주 연기금 등 일부 채권자들이 7일 이를 유예시켜 줄 것을 대법원에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이들 채권자는 맨해튼 파산법원의 아서 곤살레스 판사가 크라이슬러의 자산 매각을 승인하자 보상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며 파산법원의 결정에 반대하는 항소를 했다. 그러나 항소법원에서도 이들의 요청을 기각하고 매각을 조건부로 승인하자 대법원에 긴급 유예신청을 한 것이다.
크라이슬러는 회생계획을 통해 지프와 크라이슬러, 다지 브랜드 등 주요 자산을 전미자동차노조(UAW)가 55%, 피아트가 20%, 미국ㆍ캐나다 정부가 10%의 지분을 갖는 새 크라이슬러 법인에 매각할 방침이었다.
이번 대법원의 결정으로 인해 오바마 정부가 미국의 대표적 자동차업체인 크라이슬러와 제너럴모터스(GM)에 대한 구조조정을 챕터11(기업회생절차)를 통해 신속하게 마무리하려는 계획에도 차질이 생겼다.
오바마 행정부는 크라이슬러가 더 이상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크라이슬러와 피아트의 합병을 적극 추진해왔다.
지난 1일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GM의 파산보호를 신청이 이뤄진 후 백악관에서 가진 연설을 통해 "크라이슬러의 파산보호 절차와 경험이 GM의 성공모델이 있다"며 크라이슬러의 회생을 사실상 확신했다.
이날 미 행정부는 성명을 통해 "대법원이 판단을 유보할 정도로 크라이슬러의 자산매각 여부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판단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임을 공감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결보류로 인해 크라이슬러의 자산매각 일정이 불투명해짐에 따라 일부 전문가들은 GM의 구조조정에도 혼선이 빚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제리 레이즈만 파산전문 변호사는 "대법원이 이번 판결에서 만약 크라이슬러 채권단의 손을 들어줄 경우 GM의 채권단 역시 똑같이 항소하려 들 것"이라며 "이는 뉴GM의 구조조정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레그 마틴 GM대변인 역시 "법원의 판결유보에 대한 구체적 이유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 없어 명확한 입장을 내 놓기 곤란하다"면서도 "대법원의 판결유보 소식에 크게 놀랐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대법원의 보류 판결이 나온 후 피아트의 세르지오 마르치오네 최고경영자(CEO)는 블룸버그 통신과의 전화 인터뷰를 통해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법원의 결정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오는 15일까지 결판이 나지 않을 경우 크라이슬러 인수에 손을 뗄 것인지 묻는 질문에 마르치오네CEO는 "우리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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