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불황을 뚫고 떠오르는 '풍운아'라고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호평했다.
타임지는 아시아판 최신호에서 세계적 경기후퇴로 미국기업들이 고전하는 사이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4개 기업들이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며 이들의 전략을 소개했다.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위기는 업계의 판도를 뒤엎을 정도로 전방위적이다. 영원할 줄만 알았던 승자도 수요급감과 신용경색으로 무너지는 것이 현실이다.
세계 최고 자동차를 외치던 크라이슬러와 제너럴모터스(GM)마저 한달 간격으로 잇따라 파산보호를 신청했다. 하지만 위기가 기회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들에게 큰 주목을 받지 못하던 이른바 3류기업들이 호황기에는 꿈도 꾸지 못할 전략으로 업계를 주도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소비자에게 돈이 아닌 자신감을 돌려줘라.
경제위기가 불어 닥치기 전 미국 내에서 현대차의 유일한 무기는 경쟁사에 비해 저렴한 가격이었다. 하지만 불황의 여파가 저가업체에도 퍼지면서 현대차의 매출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존 크라프첵 현대차 미국법인장은 "문제의 실체는 기존의 리베이트나 할부금제도 등의 영업전략이 아니라 나빠진 경제상황에 소비자들이 실직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현대차는 이러한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방안을 강구했고 이 때 나온 것이 '바이백(Buyback)'프로그램이다. 1월 초부터 시행된 이 프로그램은 자동차를 구입한 소비자가 1년 내에 실직하거나 소득을 잃을 경우 차량을 반납할 수 있도록 하는 일종의 자동차보험이다.
미국인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어려운 시기에 돈이 아닌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는 감성적 마케팅의 힘이 크게 설득력을 얻은 것이라고 잡지는 분석했다. 현재까지 이 프로그램에 적합한 6만명의 소비자들 중 10대만이 실제 차량을 반납했다는 사실로 비춰볼 때 향후 바이백 프로그램으로 인한 현대차의 손실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 보고서에 따르면 오히려 이 프로그램은 현대차가 미국내 매출을 10%이상 끌어올리는 효과를 줬다. 또 2009년 4월까지 전미 지역의 자동차수요가 전년대비 37%나 떨어진 상황에서 현대차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2.8%에서 4.3%로 두 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에이서, 불황의 흐름을 타라.
대만의 컴퓨터제조업체 에이서는 가격파괴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2009년 1분기 전세계 개인용컴퓨터(PC)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7%나 감소했다. 반면 에이서의 매출은 이같은 위축된 시장상황에 역주행하며 고공행진 중이다. 시장조사업체인 IDC에 따르면 에이서의 올해 1분기 PC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0% 증가하며 5970만 달러의 순익을 기록했다. 글로벌 시장점유율 역시 지난해 10.1%에서 11.9%로 올랐다.
특히 에이서는 주종목인 노트북 판매로 1분기 시장점유율 17%를 차지해 1위인 휴렛팩커드(HP)의 뒤를 바짝 쫓고 있다.
경쟁사들이 불황이전 수준의 높은 가격대로 시장점유율을 유지하는데 급급하는 동안 에이서는 얇아진 주머니 사정을 고려한 넷북 등의 저가제품 출시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잡지는 설명했다.
IDC의 통계에 따르면 실제 에이서 제품라인은 지난해 평균 855 달러에서 28% 감소한 611 달러로 판매되고 있다.
J. T. 왕 에이서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PC가 현대사회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지만 경제위기로 인해 사람들이 낮은 가격대에 그런대로 괜찮은 품질의 PC로 몰리고 있다"며 "제조업체로서는 불편한 이 현실을 에이서는 받아들이고 적극 활용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경쟁사들은 더 많이 팔 수록 손해를 본다고 판단하지만 우리는 소비자들이 원하는 상품을 제공하고 판단은 그들에게 맡긴다"고 덧붙였다.
그렇다고 품질을 무시하지도 않았다. 일례로 지난 5월 에이서는 새로운 초슬림노트북인 '어스파이어 타임라인(Aspire Timeline)'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699 달러의 저가이지만 한번 충전시 8시간 구동이 가능해 성능면에서도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프리마크, 알뜰히 멋을 내는 '리세션리스타'를 잡아라
불황기에 보통 의류업계는 파격세일로 고객들을 유혹한다. 하지만 불황에도 유행은 있는 법. 싼 가격만으로 소비자들을 매장으로 끌어들일 수는 없다.
타임지는 아일랜드 중저가 의류업체인 프리마크가 빠르게 변하는 스타일에 맞는 다양한 제품들을 신속하게 내 놓으면서 알뜰히 멋을 내는 '리세션리스타'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고 소개했다.
최소 6주마다 새로운 제품들이 매장에 진열되고 이러한 제품이 돋보일 수 있도록 매장 인테리어도 고급화했다. 매니아들은 심지어 이러한 프리마크의 제품들에 대해 프리마니(프리마크+아르마니), 프라다마크(프리마크+프라다)라고 극찬하기도 한다.
실제 영국내 2위 의류소매업체인 프리마크의 지난해 9월~올 2월까지 6개월간 매출은 전년동기 대비 18% 올라 18억 달러를 기록했다. 영업이익 역시 10% 상승한 2억 달러를 나타냈다.
필만, 불황에 세를 넓혀라
독일의 1위 안경업체인 필만은 지난해 독일 안경판매의 절반을 차지하며 1060만 개의 안경을 팔아 치웠다. 필만은 불황에 허덕이는 소규모 경쟁사들을 사들이며 사업확장을 통해 부동의 1위자리를 꿰차고 있다고 타임은 소개했다.
현재 독일에서 536개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필만은 150개의 매장을 신설할 계획이다. 올해에만 독일에서 30곳을 새로 열 예정이다. 조지 제이스 필만 재정이사는 "불황으로 인해 소규모 경쟁업체들이 저가로 시장에 나와 있어 이러한 기업들을 인수할 것을 심각하게 고려 중"이라고 말했다.
특히 필만이 이러한 확장세를 이어갈 수 있었던 것은 아시아의 값싼 안경제조업체들과 디자이너 브랜드를 대량으로 구입해 비용을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타임은 설명했다.
필만은 대규모 자금력으로 사업확장에 필요한 실탄이 충분히 장전된 것으로 보인다. 독일안경연합회의 통계에 따르면 필만의 지난해 매출은 전년대비 7% 증가했고 순익은 1억6300만 달러를 기록해 39%나 상승했다.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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