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잇따르고 있다.
서울대 교수들은 3일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교수 일동' 명의로 "이명박 대통령과 현 정부는 국민적 화합을 위해 민주주의의 큰 틀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내용의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중앙대 교수들도 '다시 민주주의의 죽음을 우려한다'는 제목의 시국선언을 통해 "노 전 대통령 서거와 용산 철거민 참사, 화물연대 박종태씨의 죽음은 이 나라가 절망의 땅으로 전락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언한다"고 밝혔다.
연세대와 경북대·영남대·대구대 등 대구·경북지역 대학 교수 300여명도 5일경 공동 시국선언문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교수들만이 아니다. 시민사회단체 30여곳이 그제 시국선언을 냈고, 어제는 집회·시위의 자유가 이명박 정부 들어 크게 위축됐다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식 성명까지 나왔다.
시국선언은 1970년대 유신시대와 80년대 군부 독재하에서 정권에 비판적인 원로들과 지식인들의 유력한 현실참여 방식이었다. 특히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우리 현대사에서 민주주의가 결정적인 고비에 처했을 때 '국면 전환'의 기폭제가 돼왔다.
4·19 당시 "학생들의 피에 보답하라"는 전국대학교수단 시국선언은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를 이끌어 낸 결정적 계기가 됐다. 독재와 인권문제가 주요 이슈였던 유신시대 때도 민주화를 요구하는 각계의 시국선언이 빗발쳤다. 시국선언의 주무대였던 서울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성지로 불리웠다.
시국선언은 민주화를 열망하는 국민을 결집하는 힘이 있었다. 서울대생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과 '4·13호헌선언', 연세대생 이한열 군 최루탄 사망사건을 거치며 더 단호해진 각계의 시국선언이 6월 항쟁에 힘을 보탰다.
결국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자신의 후계자이자 대선 후보로 선출된 노태우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의 건의를 받는 형식을 빌려 '대통령 간선제'를 포기하고 직선제를 수용했다.
2004년에는 노무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면서 서울대 교수들이 시국선언을 내놨고, 지난해 5월 촛불집회 때도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등과 연세대 교수 등이 '촛불시위 폭력진압 중단' 등을 요구하는 시국선언과 성명서를 낸 적이 있다.
겉으로는 국민적 단결과 화합이 이뤄진 듯 했지만 내부적으로는 분열과 갈등이 내연하고 있던 그 시대의 바닥을 흐르던 목소리를 대변했던 시국선언이 오늘 다시 들려오게 된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 사회가 또 다른 분열의 시대로 빠져들고 있다는 증거다.
교수들의 시국선언은 지난 수십년간 온갖 희생을 치르며 이뤄낸 민주주의적 가치가 이명박 정부 들어 크게 훼손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소통과 연대의 정치, 기본권 보장, 소외계층 배려 등을 촉구했다. 전부 민주주의의 기본에 해당하는 내용들이다.
대통령과 집권여당 그리고 친여 세력들은 이 같은 시국선언 내용을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국민이 시국선언의 자구 하나하나에까지 100% 공감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나라가 지금 위기에 처했다는 절박한 상황 인식에는 누구도 이의를 달기 어려울 것이다. 시국선언이 나온 것은 현 정권의 독선이 자초한 것이다. 대통령이 국민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하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이런 말이 나왔겠는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화를 표방하는 21세기에 아직도 시국선언을 내고 들어야 하니 착잡하기만 하다.
서영백 기자 inch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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