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 전 대통령 서거]"고인의 고통 되새기며 7km 걸어왔어요"

2009-05-26 19:44
  • 글자크기 설정


슬픔에 잠긴 봉하마을…30도 더운 날씨에도 조문 행렬 끊이지 않고


故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 봉하마을에서 약 7km 떨어진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상점이란 상점은 모두 문을 닫은 거리와 그 위를 오가는 행인들의 표정은 현지의 무거운 공기를 대변하는 듯하다.

인적이 뜸한 거리에는 ‘故노무현 전 대통령을 추모합니다’라는 검은 현수막들만이 낯선 방문객들을 맞이했다.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섭씨 30도 더위도 오히려 서늘하게 느껴지는 착각이 든다. 

진영읍내와는 달리 마을로 가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조문객들의 줄이 500m가 넘는 장사진을 이뤘다.

이미 주말에 조문을 다녀왔다는 자원봉사자 임윤수씨는 “주말 동시간대에 비해선 조문객수가 절반 수준”이라며 “오늘은 평일에다 날씨도 더워 이 이상 오진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임씨의 예상과는 달리 오후 2시를 지나면서 뒤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조문객은 점점 늘어만 갔다.

이날 ‘노무현을 사랑하는 모임(노사모)’ 측 관계자에 따르면 퇴근길 빈소를 찾은 직장인들까지 합류, 밤 11시까지 30만(자체 추정치)명을 훌쩍 넘었다.

많은 조문객으로 차량 출입이 제한된 봉하마을 어귀부터 빈소까지 약 2km. 평소라면 한적했을 시골길 곳곳에 조문객들이 꽂아놓은 국화꽃들이 눈에 띄었다.

이를 지켜보며 빈소를 향하는 수많은 조문객들의 표정도 하나같이 숙연해진다.

월차를 내 일가족과 함께 방문했다는 맹호윤(48.부산)씨는 “한때 나라의 어른이자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평생을 살다간 분인데 헌화라도 하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찌는 듯한 더위에도 노 전 대통령이 임종 전 받았을 고통을 돌이키며 진영읍에서부터 일부러 도보를 택했다는 김철규(53.양산)씨는 “고인의 유서 중 ‘삶과 죽음이 모두 하나가 아니겠는가’는 글귀가 아직도 심금을 울린다”며 애도의 뜻을 표했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글귀가 곳곳에 마련된 봉하마을 회관 빈소는 많은 조문객들로 인한 혼잡함과 엄숙함을 동시에 실감할 수 있었다.

‘대통령님 제가 7살이었을 때 저랑 같이 사진 찍었잖아요. 그리고 사랑합니다(제지주)’ ‘인권 변호사시절 문경에 오셔서 광산 노동자들과 함께 한신 그 모습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김우태)’ 등 조문객이 남기고 간 방명록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을 뭉클케 한다. 

고건 전 총리, 민주당 박주선·안희정 최고위원, 임동원 전 통일부장관, 강금실 전 법무부장관 등 정·관계 고위 인사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무거운 분위기에 짓눌린 듯 하나같이 조의만 표한 채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다.

고 전 총리는 “고인은 권위주의를 타파하고 민주주의를 완성하고자 정치개혁을 추진하는 데 평생을 바친 분”이라며 “비통하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고 애석해 했다.

주말 새벽 미국에서 비보를 듣고 급히 귀국했다는 이종섭 전 통일부장관도 “비통하다는 말 밖에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며 말을 잇지 못했다.

환영받지 못한 조문객들도 있었다. 박희태 대표, 정몽준 최고위원을 비롯한 한나라당 지도부다. 이들은 조문에 참석키 위해 마을 입구까지 진입하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성난 노사모 회원들이 생수통을 던지며 조문을 막는 통에 아무 것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한손엔 국화, 한손엔 촛불”

조문객들의 행렬은 다음날 새벽까지 끊임없이 이어졌다.

장의위원회와 일부 자원봉사 단체에서 마련한 4만인분의 식사가 동나자 익명의 단체는 빵과 우유를 보충지원 했다.

30도까지 올라간 더위와 혼잡한 인파를 견디지 못해 추모식 중 탈진, 업혀가는 사람들도 눈에 띈다.

이날 현장 응급 의료실에서는 모두 60여명이 치료받았다.

노사모 측에선 땅거미가 지자 마을 입구에서 분향소에 이르는 도로변을 촛불로 밝혀 조문객들을 안내했다.

이를 계기로 한손엔 국화를, 한 손엔 촛불을 든 조문객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저녁 8시 이후엔 작년 촛불시위가 재현된 듯 ‘불꽃의 바다’로 장관을 이뤘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민은 “노 전 대통령도 이 광경을 보고 홀가분히 떠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는 영원한 대통령”이라고 말했다.

생전 노 전 대통령의 영향력을 다시금 확인한 순간이었다.      

진영읍에서 택시운전을 하는 정영철씨(45)는 “지난 2002년 대선 때 고향인 이곳에서 노 전 대통령 지지율이 51% 밖에 안 됐다”며 “하지만 이번 일을 겪고 나니 사람들의 마음이 노 전 대통령 동정론으로 확 쏠리고 있다”고 민심을 전했다. 

김해/ 김종원 안광석 기자 novus@ajnews.co.kr
('아주경제=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