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후보였던 세계 불교계의 상징적 인물 틱낫한 스님. 그의 수필집 <화>에는 성냄을 다스려 마음의 평화를 얻는 지혜가 담겨있다.
달라이 라마와 더불어 세계 불교계의 큰스님으로 존경받는 그는 화를 푸는 근본 해결책은 없다고 말한다. 스님은 함부로 떼어낼 수 없는 신체장기처럼 화도 우리의 일부이므로 억지로 참거나 제거하려 애쓸 필요가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차라리 화를 울고 있는 아기라고 생각하고 보듬고 달래라고 충고한다.
‘마음의 씨앗’인 화를 인정하고 찬찬히 들여다보면 결국 다스릴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이를 틱낫한 스님은 ‘마음 밭 갈기’라고 설명하고 있다.
스님은 화가 났을 때는 남 탓하지 말고 자책하지도 말고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제일 시급한 일이라고 지적한다. 마음을 다스리려면 어떠한 자극이 와도 동요하지 않고 평상심을 유지하는 방법을 체득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것이 그가 평생 전쟁과 폭력의 중심에서 온몸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며 체득한 결과라고 한다.
온 나라가 슬픔에 잠겼다. 아니 화가 치밀어 오르는 슬픔에 잠겼다고 해야 마음에 맞는 표현일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경험할 수 없었던 한 사람을 보내는 마음이 매우 불쾌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다.
성서 속 예수는 로마군에게 자신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한 제자 베드로를 용서해 복음을 전하는 메신저로 삼았다. 부처는 제 앞에 놓인 부귀영화에 눈길을 주지 않고 스스로 구도자의 길로 들어섰다. 성인군자들이라 그런지 마음 씀씀이들이 크고 넓다.
그런데 필부필부들은 그렇지 못하다. 철학자 도올 김용옥은 지식을 두고 “넓으면 깊을 수밖에 없고, 깊으면 넓을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 했다. 말을 바꾸면 지식이 아닌 다른 어느 것에도 통용된다. 화 역시 넓게 퍼질수록, 깊을수록 그렇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는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마련한 빈소가 있다. 그 곳을 경찰은 버스로 둘러싸고 있다. 제2의 촛불을 막겠다는 이유로. 청와대는 그러나 예우에 어긋남이 없도록 하라고 지시했다. 겉과 속이 다르다. 시민의 화를 건드려 무엇을 얻으려는지. 지금 온 나라가 어떤 지경인지 모르는 것 같다.
겁나서 그러는 것인가? 그래도 직접 나와 몸으로 느껴라. 더듬이를 세워 전파 도둑질로 정보를 수집하지 말고. 시청을 울리는 울음을 들으라. 틱낫한 스님의 말처럼 안정을 원하거든 치밀어 오르는 울화를 삭힐 공간과 시간을 줘야 한다. 슬픔은 갇혀 있으면 가공할 폭발력을 갖게 된다.
이것이야 말로 소요를 잠재우는 가장 완전한 방법이다. 스님의 말처럼 오히려 화를 보듬고 달랠 수 있게 해 줘야 한다. 마음을 다스려 풀도록 해야 한다. 자극을 주지도 말고 받지도 않도록. 평상심을 유지하도록 이끌어 줘야 한다는 말이다. 자꾸 자극하면 슬픔이 외려 깊어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슬픔도 힘이 된다는 것을 어서 빨리 깨달아야 한다.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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