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박이라는 사안으로 돌아가 보자. 전국선거운동위원회(RNCC)는 민영화는 민영화가 아니라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납득시킬 수 있다고 진짜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이 목표는 아니다...(중략) 안타깝게도 이것은 비단 사회보장 정책에만 관련된 문제는 아니다. 흰 것을 검다고, 위를 아래라고 우기고도 버틸 수 있다고 정부가 일단 믿기만 하면 그런 행동이 어디쯤에서 멈출지 예측하기 어렵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저서 '대폭로(The Great Unraveling)'의 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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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태성 금융부 차장 | ||
국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국익에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민영화 정책을 추진했던 부시 행정부는 이후에도 국가경제 전체가 아닌 소수를 위한 정책에만 몰두하다 금융위기라는 전대미문의 쓰나미를 몰고 왔다.
시장자본주의를 외치던 미국이라는 거대한 배는 결국 금융위기 태풍 속에 주요 은행들의 실질적인 국유화로 선회하면서 주요 4대 투자은행이 역사속으로 사라졌음은 물론 100년 동안 누리던 자본시장의 패러다임 바통을 놓치고 말았다.
지난달 국회는 산업은행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산업은행을 지주회사로 전환하고 5년 안에 지분을 전량 처분한다는 것이 골자다.
이명박 정부는 산업은행 민영화를 선거 공약으로 제시했었고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야심차게 밀어붙였다.
개정안 통과로 오는 9월 산은지주회사와 정책금융공사가 출범한다. 민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산은지주회사의 자산 내역은 화려함 그 자체다.
대우증권을 비롯해 산은자산운용, 대우조선해양, 한국전력공사, 하이닉스반도체 등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굴지의 회사들을 총망라하고 있다. 자산규모만 140조원으로 추정된다.
의회 통과로 민영화 추진 테이프가 끊어졌지만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자산의 매각 이후 용도는 아직 불분명하다.
민영화를 통해 마련한 자금으로 중소기업을 지원한다는 설이 있지만 이 역시 구체적인 청사진은 없다.
문제는 산업은행 민영화의 궁극적인 목표가 시장의 원리에 금융산업을 완전히 던진다는 것이다.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로 중소기업이 아사 직전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금융권은 중소기업 대출에는 여전히 관심이 없다.
민영화 이후 산업은행에 대해서도 그다지 큰 기대를 할 수 없음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글로벌 투자은행을 육성하겠다고 큰소리치고 있지만 절반 이상의 지분을 넘기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면 수익성 개선의 혜택이 국민들에게 돌아가지 못할 공산도 크다.
민영화를 위한 민영화는 의미가 없다. 더군다나 글로벌 자본주의 리더를 자처하던 미국의 지금 모습은 우리가 기존에 좇던 금융 패러다임이 옳지 않았음을 방증한다.
위기를 통해 배우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희망이 없다. 아예 몰랐다면 동정이라도 구할 수 있지만 뻔한 사례를 바로 앞에 두고도 씹어버린다면 그건 죄악이다.
대폭로에서 크루그먼은 이렇게 지적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결국에는 현실에서 어떻게 해서든 스스로를 입증하고 만다는 사실이다. 설사 당신이 의아해 하고 있더라도 무지가 힘은 아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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