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앞으로 4개월 동안 이런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끔찍해요"
A은행 일선 영업점에서 인턴으로 일하고 있는 최씨(남, 28)는 울분을 터트렸다.
국제재무설계사(CFP) 자격증을 소지한 최씨는 인턴을 시작할 때만 해도 자신감에 넘쳤다. 하지만 한 달 가량이 지난 현재 예상과는 다른 현실에 초조함만 커져가고 있다.
평소 영업점의 정규직 직원들은 그에게는 아무 일도 시키지 않는다. 그가 먼저 나서서 일거리를 달라고 하면 찢어진 홍보 포스터를 붙이는 등 허드렛일만 되돌아온다.
최씨는 지금 상황을 당장 외부에 알리고 싶었지만 자신의 실명이 거론돼 불이익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빠졌다.
#2)수도권 명문 사립대학교 4학년에 재학하다 취업 준비를 위해 휴학한 이씨(여, 27)도 얼마 전부터 B은행 영업점에서 인턴십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의 아침 8시까지 출근해 하루 종일 영업점 입구에서 내점 고객에게 인사를 하고 창구 안내를 돕는다. 또 커피를 타거나 복사같은 은행원들의 잔심부름으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복사기와 친해지는데 1달이 걸렸다"고 말문을 연 그녀는 "B은행이 취업의 기회를 제공한다며 1주일에 3일만 출근하도록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인턴들을 '짐'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정부가 일자리 나누기(잡셰어링)의 일환으로 시작한 금융권 청년인턴십 프로그램이 은행들의 무관심 속에 반쪽짜리 인턴십으로 전락하고 있다.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은행은 거의 없으며 인턴들에게는 복사나 심부름 등 잡일만 주어지고 있다.
심지어 C은행의 경우 1기 인턴 30여 명에게 청약, 카드, 방카슈랑스 영업을 직간접적으로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치화 금융산업노동조합 정책부장은 "은행들이 인턴을 채용하고 방치하다보니 인턴들은 나은 미래와 자기 발전을 위한 노동을 못하고 있다"면서 "자존심에 상처를 받고 은행을 떠나는 인턴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 인턴의 이탈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B은행의 경우 2월 선발한 인턴 500명 중 절반 정도(249명)가 2달 만에 회사를 떠났다. C은행도 인턴 300명에서 현재 261명으로 40여명이 이탈했다.
반면 은행과는 달리 여타 금융업권 인턴들의 업무 만족도는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증권의 경우 지난 3월초에 선발한 84명 가운데 현재까지 결원없이 인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한화증권 역시 3월말 선발한 20명의 인턴 중 단 2명 만이 회사를 떠난 상황이다.
김진호 삼성증권 홍보과장은 "인턴에게 담당선배를 지정해 1:1 도제식 교육을 실시하고 1주일에 한 번씩 자기가 한 일을 인사과에 제출하는 등의 체계적인 관리체계를 갖추고 있다"면서 "인턴 중 50%정도를 정식직원으로 채용하는 인센티브도 제공하고 있어 업무만족도가 높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김유경 기자 ykki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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