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취임 100일…"흔들리는 '통합'과 '변화'"

2009-04-26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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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론 속 '정파성', '경기 발목' 우려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할 수 있다(Yes, We Can)'라는 희망찬 구호로 백악관 문턱을 넘는 데 성공했다. 취임 100일을 맞는 오바마에 대한 평가는 일단 긍정적이다.

미국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25일 오바마 대통령의 취임 100일 성적이 린든 존슨 전 대통령을 제외하면 1930년대 대공황 시절을 지낸 프랭클린 루스벨트 전대통령 이래 가장 좋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선 '변화'를 강조한 오바마 행정부가 공화당을 중심으로 한 보수 진영을 포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금융위기에 따른 생채기가 워낙 커 불확실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뉴스위크도 오바마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어 지금의 지지도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변화'추구…'정파성' 한계는 여전
백악관에 들어선 오바마는 할 일이 태산이었다. 경기부양은 물론 조지 부시 전임 정부의 유산을 정리하고 새로운 정책 비전을 제시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였다. 특히 자신에게 힘을 실어준 국민들에게 '변화'를 각인시키는 게 무엇보다 중요했다.

오바마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경기부양 자금을 투입했고 부동산시장 안정대책, 은행 부실자산 인수 조치, 자동차산업 구제안 등 금융위기로 파생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카드를 쏟아냈다. 또 부시 전 행정부 때 소원해진 유럽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북한과 이란, 쿠바, 베네수엘라 등 '불량국가'들과 대화를 시도하는 등 이른바 '스마트 파워 외교'도 시도했다.

하지만 일련의 정책노선에 대해 진보 진영은 열광했지만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진영은 분명한 대립각을 세웠다. 오바마의 지지도가 60%대에 그친 것은 초당적 지지를 얻는 데 실패한 결과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대선기간 내내 통합을 기치로 내걸어 당선했던 오바마는 역설적이게도 취임 100일동안 가장 '정파성'이 강한 대통령 가운데 한 명으로 기록될 처지에 놓였다. 그가 벤치마킹했던 케네디의 경우 취임 100일 동안 반대의견이 불과 6%에 그쳤지만 오바마는 20%대의 반대세력을 마주하고 있다.

오바마의 정파성은 지난 2월 경기부양법 표결에서 두드러졌다. 하원의 경우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의원이 한 명도 없었고 상원에서도 법안에 찬성한 공화당 의원은 3명에 불과했다.

집권세력 지지집단이 대통령에 대해 보여준 최고 지지율에서 야당 지지층에서 나타난 최저 지지율을 빼는 방식으로 산출되는 정파성 지수에서 오바마는 평균 60을 기록했다. 이는 당파성이 강했던 공화당의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57%, 민주당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51%를 웃도는 것이다.

이처럼 오바마의 정파성이 강하게 나타난 이유는 지난 1990년대 이후 꾸준히 진행돼 온 워싱턴 정계와 국민의 이념적 양극화 현상에다 오바마의 '반(反) 부시' 정책기조에 대한 반발이 맞물려 상승작용을 일으켰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경기 발목'…탈출 여부가 '재선' 가를것
경기회복 여부가 불투명한 가운데 현 위기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점도 오바마에겐 더없이 큰 부담이다. 일각에서는 위기 극복 이후 오바마가 펼칠 '오바마노믹스'의 성공 여부가 재선의 고비가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코노미스트는 최신호에서 "최악의 상황이 지나갔다고 섣부르게 판단하는 것이 오히려 더 최악의 상황을 불러 올 수 있다"며 낙관론을 경계했다.

하지만 오바마는 주요 선진국 지도자 가운데 처음으로 낙관론을 폈다. 그는 지난 14일 조지타운대에서 행한 연설을 통해 "처음으로 희망의 빛을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경기부양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를 거의 다 동원한 오바마의 조급한 심정이 반영된 게 아니냐고 진단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온 경기지표들이 희망적이기는 하다. 2월 주택판매 실적이 5년여만에 가장 높은 증가율을 기록했고 6개월 연속 감소하던 내구재 주문도 2월 증가세로 돌아섰다.

3월 내구재주문 실적은 전월 대비로 0.8% 감소했지만 시장 전문가들이 예상했던 하락폭 1.5%에 훨씬 못미쳤다. 3월 중 신축 주택의 재고물량도 45년만에 가장 큰 폭으로 감소, 부동산 시장이 저점에 근접했음을 보여줬다.

뉴욕 증시에서도 바닥론이 들리고 금리는 하향안정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매주 발생하는 실업자 수는 65만명 수준을 맴돌고 있다.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능동적인 개입으로 요약되는 오바마노믹스가 서서히 효과를 발휘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현상들이다.

그러나 대공황 당시에도 일시적으로 경기가 호전되는 양상을 보이다가 은행의 부실이 심화되면서 경기가 다시 곤두박질친 사례를 들어 침체탈출을 속단할 수 없다는 주장도 만만찮다.

실제로 오바마노믹스의 재정지출 확대의 효과로 건설·소비 경기가 반짝 호전된 양상을 보였다면 부양책의 약발이 떨어질 경우 다시 경기가 가파르게 하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오바마 행정부가 의회의 승인을 받은 7870억달러의 부양자금을 다 쓰고 나서 추가로 의회에 손을 벌리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2009 회계연도의 미 재정적자는 1조7500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천문학적인 적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공공부문에 재정지출을 더 확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오바마로서는 가능한한 빠른 시일내에 경기가 회복세로 돌아서, 세수가 늘고 재정적자 증가세 꺾이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달리 경기침체가 내년 중반 이후까지 장기화할 경우 엄청난 정치적 압박에 놓일 것으로 보인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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