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부재- 삶의 소리가 들려올 듯한 풍경

2009-04-08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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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 새벽_53x53,oil on canvas,2009
 sun gallery

잠깐 스쳐지나가며 들여다 본 그림 안에 내가 그리고자 했던 세상이 들어 있다면. 누구나 저마다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풍경’이 존재한다. 슬픈 일이 있을 때의 세상은 회색빛이다. 나른한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지는 날이면 세상은 온통 노란 빛으로 물들어 보인다. 화폭 안에 사람의 존재가 드러나지 않아도 ‘저 안에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구나’라고 느껴지는 데는 그것을 바라보는 ‘나의 존재’가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해체를 통한 삶과의 대면
16일까지 인사동 선화랑에서 열리는 김성호 개인전의 작품들은 하나같이 ‘새벽’이라는 제목이 걸렸다. 왜 저마다의 제목이 없느냐는 물음에 김성호 화백은 “20년 넘게 새벽 풍경을 그려왔다. 한결같은 제목이라도 보는 사람이 이렇다 저렇다 상상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라고 간단하게 답한다.

새벽의 그림들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무수히 많은 ‘빛’들이 그려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정형화된 틀로 대상을 형상화 한 게 아니라 빛의 해체를 통해 전체를 구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는 “새벽길을 걷다가도 남산에 올라서도 낚시 바늘을 드리우다가도 새벽이 어우러진 야경을 조망해왔다”고 설명했다. 새벽을 나타내는 빛은 그래서 한 가지로는 표현될 수 없었을 것이다. 빛이 빚어내는 느낌에 대기의 흐트러짐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그저 어스름한 풍경일 수도 있는 그 안에는 노란 빛을 내는 버스와 길 한쪽 켠에  주황색 포장마차가 자리해 있다. 멀리서 바라본 새벽 풍경도 차도에는 늘 밝은 색이 입혀져 있다. 작가는 “도로를 밝게 표현한 데는 단순히 그 옆에 가로등이 서 있기 때문이 아니다. 불빛 하나로도 새벽을 움직이는 생명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헤아릴 수 없는 삶의 필적 

19일까지 쌈지 갤러리에서 전시되는 이준규 판화전에는 창문을 매개로 한 풍경이 있다. 사람의 존재는 찾아 볼 수 없다. 때때로 창문 아래 푸른 잔디가 깔려 있거나 창문이 멀거나 혹은 가까이서 그려져 있을 뿐이다.

이준규 화백은 “숨겨져 있는 창문을 통해서 사람들의 제각각 다른 삶을 간접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표현 의도를 설명했다.

이를 반영하듯 창문 틈으로는 보이는 커튼의 문양은 저마다 다르다. 서로 다른 취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살고 있구나 하는 상상이 들 법도 하다. 작가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서민적인 전원주택을 그렸다”고 덧붙였다.

20일까지 소격동 빛 갤러리에서 진행되는 국대호의 ‘일상의 도시 속에서 발견하는 아름다움’ 작품전에는 해질 무렵의 풍경이 사실적으로 세밀하게 표현돼 있다. 그러나 그 풍경의 포커스는 한 움큼의 눈물을 머금은 채 바라본 것처럼 흐릿하게 빗나가 있다.

작가는 무엇을 담아내고 싶었을까.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미세한 필적 안에 삶을 바라보는 시선만 가득할 뿐이다.

정진희 기자 snowwa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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