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기의 수레바퀴) ‘완장’ 뗀 노조

2009-04-07 15:54
  • 글자크기 설정

2009년 4월2일. 서울모터쇼 프레스 데이가 열린 고양 킨텍스에서는 믿기 힘든 광경이 펼쳐졌다. ‘단결’과 ‘투쟁’ 구호가 선명한 ‘붉은색 조끼’로 각인된 노조 지부장이 노타이에 정장 차림으로 변신했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김종석 금속노조 기아차지부장. 그는 이날 ‘쏘렌토R’ 신차 발표회장에 붉은 조끼 대신 말끔한 정장에 헤드셋 마이크까지 착용한 채 등장했다.

노조 지부장인 줄 몰랐던 이들은 놀란 눈치였다. ‘노조 전문가’ 윤여철 현대차 부회장이 “경제 위기를 같이 느끼고, 같이 잘 해보자는 의미다. 노조가 생산뿐만 아니라 판매에도 더욱 노력하겠다는 뜻”이라고 말 했을 정도다.

그런 김 지부장의 ‘변신’은 이날 최대 이슈였다. 쌍용차 노조 지부장이 작업복 차림으로 등장한 것에 비하면 가히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기아차 서영종 사장과 함께 단상 위에 오른 그에게서 강성노조 지부장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물 흐르듯 거침없는 말솜씨에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 역시 내외신 기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굳이 표현하자면 기아차 영업사원이랄까? 자신부터 판매 확대에 적극 나서겠다며 “쏘렌토는 기아차의 얼굴이다. 품질과 생산을 책임진 노조지부장을 믿고 기아 ‘쏘렌토R’를 많이 사랑해주고 적극 홍보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동안 김 지부장은 신차가 나올 때마다 지부장이 직접 참석해 품질 확보와 정상 출고를 약속하곤 했다. 지난해 1월 모하비를 시작으로 6월 로체이노베이션, 7월 포르테 신차발표회에 잇따라 참석했다. 지난해 12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혼류생산과 물량 재배치에 전격 합의한 것도 이런 연장선에서다.

이날 김 지부장의 변신은 당면한 위기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미 전 세계 자동차 업계에는 구조조정 한파가 거세다. 미국 ‘빅3’는 존폐를 걱정하고 있다. 일본 토요타도 올해 여름까지 비정규직 6000명을 전원 해고할 방침이다. 국내의 경우 신규 채용을 백지화한 GM대우는 오는 5월 임금 10%를 삭감한다. 쌍용차는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 중이다.

김 지부장은 이를 의식한 듯 생존을 위한 노조 차원의 고민이 많았음을 털어놨다. 그는 “좋은 차를 만들어 판매를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생존을 위협하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적인 수준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노사가 합심하는 수밖에 없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이날 김 지부장은 거침없는 발언을 마친 후 서영종 사장과 악수를 하며 단상을 내려왔다. 일각에서는 김 지부장이 파격을 준비하기까지 마음고생이 많았다고 전한다. ‘보는 눈’이 많기 때문이다. 전례를 찾기 힘든 ‘파격’이 자칫 타 노조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날 김 지부장의 모습을 직접 본 기자들은 외려 박수를 보냈다. 투쟁 일변도였던 노조가 글로벌 불황 앞에서 회사에 힘을 보태는 선례(善例)로 남았기 때문이다. 노조의 전폭적 지지를 덤으로 얻게 된 기아차 ‘쏘렌토R’의 성공도 눈앞에 보이는 듯 했다.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 '아주경제' (ajnews.co.kr) 무단전재 배포금지>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0개의 댓글
0 / 300

로그인 후 댓글작성이 가능합니다.
로그인 하시겠습니까?

닫기

댓글을 삭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이미 참여하셨습니다.

닫기

이미 신고 접수한 게시물입니다.

닫기
신고사유
0 / 100
닫기

신고접수가 완료되었습니다. 담당자가 확인후 신속히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닫기

차단해제 하시겠습니까?

닫기

사용자 차단 시 현재 사용자의 게시물을 보실 수 없습니다.

닫기
공유하기
닫기
기사 이미지 확대 보기
닫기
언어선택
  • 중국어
  • 영어
  • 일본어
  • 베트남어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