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동유럽 위기 지속 등 변수가 많아 세계경제를 낙관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지적도 많다. 그러나 다수의 경제 전문기관들은 세계경제가 ‘대침체 터널’의 한 복판은 지나는 과정인 것 같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아 세계경제 회복 여부에 생사가 걸려 있는 게 한국경제다. 우리 기업들은 차제에 체질을 강화, 세계경제 회복기에 경쟁기업들과의 격차를 벌린다는 전략을 짜고 있다. 각 기업 현장마다 세계 각지에서 들려오는 ‘희망’의 신호에 더욱 분주해지고 있다. 이에 주요 그룹들의 전략을 시리즈로 진단한다. <편집자 주>
“개나리떼가 피었다고 겨울이 다 지나간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혹독한 겨울 속에서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삼성그룹 전자계열 K부사장)
“솔직히 말해 이달 초까지만 해도 언제가 ‘바닥’이 될 지 막막했습니다. 총체적 난국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희망의 빛이 보인다고 할까요. 상황이 호전될 수 있다는 비전과 새롭게 도약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고 있습니다.” (삼성 금융계열 L전무)
전자-중공업-금융을 축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선두기업 삼성그룹이 진열을 새롭게가다듬기 시작했다.<관련기사 5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경제가 충격에서 벗어날 조짐을 보이면서 위축될대로 위축됐던 삼성그룹이 강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재도약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세계경제 충격으로 인해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던 삼성그룹은 숨가쁘게 군살을 빼면서 장기전에 대비해왔다. 주력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본사의 임직원 1200명을 현장으로 전격 배치하는가 하면 임직원들의 각종 혜택을 대폭 축소했다. 머그컵 사용, 컴퓨터끄기, 절전캠페인 등 대한민국 대표기업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전방위 감량 노력도 펼쳐왔다.
영역이 중복된 계열사들의 업무는 과감히 통폐합 하되, 발광다이오드(LE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등 시장이 확대되는 영역은 별도 법인을 신설해 전문화 하는 등 조직력도 재정비하고 있다.
한 삼성 전문 애널리스트는 “장기간의 운동 부족과 습관적 고영양성 외식으로 산성화, 비대화된 체질을 다이어트 운동과 식생활 개선을 통해 바꾸듯, 1993년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선언- IMF체제 이후 불필요하게 비대해진 조직을 ‘강한 삼성’으로 재탄생시키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삼성그룹은 당초 세계경제 회복 시기를 2010년 하반기로 상정한 ‘위기대처 계획(컨팅전시 플랜)’을 짰다. 그러나 최근 글로벌 시장 상황은 삼성그룹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독일 키몬다 파산에 이어 스팬션이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 대만업계의 구조조정이 무산되면서 D램 산업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이 공고해지고 있다. D램 재고가 소진되면서 올 3분기부터는 가격이 본격적으로 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확산되고 있다. 중국의 신산업정책도 호재다. 컴퓨터와 휴대폰 공급을 전국으로 확대한다는 중국 정부의 계획은 삼성전자 매출 확대를 예고하고 있다.
이 같은 호재들을 바탕으로 지난해 4분기 1조원 가까운 적자를 기록했던 삼성전자는 빠르면 2분기부터 흑자 전환할 것이라는 전망이 확산되는 상황이다. 주력사인 삼성전자의 호전은 곧바로 그룹 전체의 도약으로 이어지게 된다.
물론 삼성 앞에 청신호만 켜져 있는 것은 아니다. D램 가격이 회복된다고는 하지만 세계 수요가 어느 정도 확대될 지는 미지수다. 가전, 이동통신 수요 회복 속도도 더딜 가능성이 크다. 중공업-건설-금융 부문도 체력을 새롭게 다지는데 상당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삼성그룹 임직원들 사이에 ‘이제 해 볼만 하다’는 분위기가 번지고 있다는 게 중요한 신호로 여겨진다.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되 ‘강한 드라이브’로 글로벌 경쟁사들과의 격차를 확실히 벌릴 수 있다는 자신감이 퍼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의 한 임원은 “세계 최대기업 소니를 제치고, IMF를 이겨낸 자신감이 다시 붙고 있다”며 “이번 대침체기를 거치면서 반도체-정보통신-가전 등 전 분야에서 삼성이 글로벌시장 지배력을 더욱 높일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이하늘 기자 eh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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