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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원 (엑스포디자인브랜딩 대표)
지난 15년간 디자인 전문회사를 운영해 오면서 많은 직원을 채용해 봤다.
그러나 채용과정에서 항상 느끼는 점은 수백명의 지원자 중에 정작 쓸만한 인재를 찾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공식 집계에 따르면 디자인 관련학과에서 매년 쏟아져 나오는 졸업생이 3만 6천여 명 정도라고 하는데, 정작 기업 쪽에서는 기껏해야 한두 명 정도의 디자이너를 채용하는 것인데도 사람 구하기가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도대체 이러한 상반된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보통 디자인 전문회사의 경우 전문 분야별로 세분화되어 있어서 자기 분야에 맞는 사람을 선호하기 마련이다. 엄밀히 말하면 자기분야에 해당하는 지식과 능력이 탁월한 인재가 필요하지, 타 과목의 수행 능력까지 중요하게 평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회사의 조직원으로서 가져야 할 인성이라든지 인접 분야에 대한 지식 등 관련 영역의 능력까지 무시한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요즘 세태는 대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총점 3.0이상’을 위해 모든 학생들이 ‘취업준비’를 하는 추세이다 보니, 전반적으로 학점이 높은 학생은 많아도, 전문회사에서 요구하는 전문적인 능력을 알차게 갖춘 인재는 점점 찾기 어려워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디자인 전문회사에서는 직원을 채용할 때, 서류전형 항목으로서 이력서, 자기소개서, 성적증명서, 작품 포트폴리오 등을 필수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우리 회사도 수년간 그 원칙을 지켜왔지만 언제부턴가 성적증명서는 필수 항목에서 빠지게 되었다. 총점을 올리기 위한 ‘취업준비’식 성적관리 추세도 원인이거니와, ‘학점세탁’이니 ‘학점성형’이니 하는 말이 유행될 정도로 성적증명서를 통한 변별력 측정이 그 효력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더욱이 작품 포트폴리오조차 진위 여부를 믿기 어려워 고육지책으로 실기시험을 별도로 치러야 하는 등 직원 채용을 위한 검증작업에만 많은 비용과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대학에서 인증하는 성적증명서가 그 사람의 능력을 평가하는 ‘검증도구’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수행해 준다면, 기업은 지원자의 변별력 측정을 위해 필요 없는 노력을 허비하지 않아도 될 것 아닌가?
나는 이에 대한 해결 방안으로 ‘학점실명제’의 도입을 주장하고 싶다. 학점실명제는, 성적표에 학점과 함께 담당 교수명이 기재되는 것이다. 학점실명제를 도입하면 교수는 자신의 양심과 소신으로 학점을 주게 될 것이고, 기업은 물타기식으로 부풀려진 학점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교수의 능력과 권위를 믿고 그 학생의 능력을 측정할 수 있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교수의 능력과 권위를 하나의 평가기준으로 측정하는 것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있을 수도 있겠으나, 필자의 의도는 어디까지나 훌륭한 스승 밑에서 훌륭한 제자가 탄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학점만 후하게 주는 스승에게 받는 A학점 보다, 학점은 후하지 않더라도 훌륭한 스승에게 받는 B학점이 더욱 값질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디자인 같은 전문 분야에서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 보다는 누구한테 배웠느냐를 더욱 중요하게 여기곤 한다. 자식이 부모의 거울이듯, 학생은 교수의 능력을 그대로 빼닮는 거울이기 때문이다. 어떤 권위 있는 교수에게 배웠고, 그 교수로부터 좋은 학점을 받았다면 충분히 학생의 능력을 인정해줄 수 있는 풍토가 정착되어야 한다.
대학에서 학기 초만 되면 학생들은 ‘학점성형’을 위해 부나방이 되어 여기저기 기웃거리고 있다. 이에 한술 더 떠 교수들은 제자들의 취업을 위한답시고 ‘학점세탁’이라는 범죄에 동조자가 되기를 서슴지 않기도 한다. 이러한 풍토가 지속되는 한, 결국 손해를 보는 곳은 ‘기업’이 될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학생들에게 다시 돌아가는 악순환이 됨을 우리 모두 명심하자.
<필자약력>
서울대 산업디자인과 졸, 중앙대 신문방송대학원 졸업(신문방송학 석사), 고려대 경영대학원 졸업 (경영학 석사)
대우그룹 기획조정실 디자이너, 월간 디자인 편집장, 대전엑스포조직위원회 디자인실장 역임
현, 엑스포디자인브랜딩 대표, 국립서울산업대학교 시각디자인과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