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미, '화폐전쟁' 불 붙었다

2009-03-25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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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기축통화 교체해야" VS 미, "달러강세는 신뢰 반영"

중국과 미국이 세계 기축통화 역할을 해 온 달러화의 위상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정책 변화에 따라 가치가 좌지우지되는 달러화가 기축통화로서의 자격이 없다며 새로운 '슈퍼 통화'를 제안하고 나섰다. 이에 미국은 달러화 강세가 시장의 신뢰를 반영하고 있다며 중국의 제안을 일축했다.

◇中, "세계 기축통화 'SDR'로 교체해야"=저우샤오찬 중국인민은행 총재는 지난 23일 이 은행 웹사이트에 올린 글에서 달러화나 유로화와 같은 특정 국가 통화의 지배력을 줄일 수 있도록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권(SDR)을 새로운 기축통화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SDR은 IMF가 달러화와 유로화 등 세계 주요 통화의 가치를 한 데 묶어 만든 통합 통화로 여러 종류의 화폐로 구성된 외환보유고를 통합적으로 표시하고 관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IMF는 가맹국들의 외환보유고 회계처리에 SDR을 사용하고 있다.

저우 총재는 글에서 달러화를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금융위기와 이 위기의 전세계적인 확산은 현존하고 있는 국제 통화 시스템에 내재된 취약성과 시스템적인 위험을 반영한다"며 달러화 중심의 세계 금융 질서를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SDR이 세계 기축통화가 되면 특정 국가의 영향력을 배제할 수 있어 각국이 보다 자유로운 통화정책을 구사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재원 고갈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IMF의 재원을 확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美, "달러화 강세는 신뢰의 반영"=미국 정부는 이에 대해 즉각 반박하고 나섰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달러화가 강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강한 경제력과 안정된 정치 시스템을 갖고 있다는 투자자들의 믿음 때문"이라며 "달러화를 대체하는 국제통화는 필요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달러인덱스 추이(출처:빅차트)

이에 앞서 미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청문회에 나온 티모시 가이트너 재무장관과 벤 버냉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도 국제 통화의 필요성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FRB 의장을 지낸 폴 볼커 백악관 경제회복자문위원회(ERAB) 위원장은 아예 중국을 직접 겨냥해 비판했다. 그는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주최한 컨퍼런스에서 "중국은 지금껏 달러화를 사들이기만 했지 팔지는 않았다"며 "중국 정부가 달러화를 많이 보유한 데 대해 불안하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 국채를 대거 보유하고 있지만 위안화의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해 달러화를 일부러 팔지 않고 있는 중국이 달러화 자산의 위험성을 얘기할 터지는 못 된다는 얘기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최근 미 정부가 미 국채에 대한 안전성을 보장해야 한다며 미 국채 매각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SDR' 기축통화 가능성 희박=전문가들은 SDR의 기축통화 등극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다. 지난 1970년대 초반 일부 은행이 SDR 예금을 받고 일부 기업이 SDR로 채권을 발행하기도 했지만 시장이 너무 협소해 활성화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유럽연합(EU)이 만들었던 유럽통화 단위인 에쿠(ECU)에 이어 유로존에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유로도 사용이 제한되기는 마찬가지다.

제프리 프랑켈 미 하바드대 교수는 "SDR이 세계 기축통화가 되면 국제 공용어로 고안됐다 지금은 사어가 돼 버린 에스페란토어의 운명에 처할 것"이라고 말했다.

때문에 전문가들은 중국의 달러화 흔들기가 세계 경제에 대한 주도권을 확대하기 위한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저우 총재의 발언이 다음달 2일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을 앞두고 나온 것은 중국이 IMF 개혁 논의에서 입김을 키우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도 있다.

IMF 이사를 지낸 에스와 프라사드 미 코넬대 교수는 "(중국의 기축통화 대체 제안에 대해) 누구도 완벽한 해결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며 "다만 중국은 이 문제를 거론함으로써 논의의 방향을 바꾸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 등으로부터 위안화 절상 및 IMF 분담금 증액 등의 압력을 받고 있는 중국이 반격의 빌미로 달러화를 들고 나섰다는 설명이다.

김신회 기자 raskol@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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