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금융실명제 하에서도 예금 출연자, 즉 실제 돈의 소유자에게 예금반환채권을 귀속시키기로 하는 명시적 또는 묵시적 약정이 있으면 예금 출연자를 예금주로 볼 수 있다는 기존 판례를 뒤집은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차한성 대법관)는 19일 이모(48.여)씨가 예금보험공사를 상대로 낸 예금반환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씨는 2006년 2월 남편 김모씨와 함께 모 저축은행을 방문해 남편 명의의 통장을 만들고 자기 명의로도 4천200만원을 예금했으나 7개월 뒤 예금 등 채권 지급이 정지되는 보험사고가 발생했다.
예금보험공사는 보험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고 김씨 명의의 예금에 대해서는 보험금을 줬으나 이씨 명의의 예금에 대해서는 실제 예금주가 남편이라는 이유로 예금을 반환해주지 않았다.
이씨는 예금주는 자신인 만큼 보험금을 줘야 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1ㆍ2심은 ▲4천200만원은 김씨 명의의 다른 예금계좌에서 인출된 뒤 입금됐고 ▲김씨가 거래신청서를 작성했으며 ▲김씨 도장이 거래인감으로 사용됐고 ▲비밀번호가 김씨 명의의 다른 계좌와 동일하다는 이유 등을 들어 예금보험공사와 같이 김씨를 실제 예금주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원칙적으로는 예금명의자를 예금주로 봐야 하지만 예금출연자에게 예금반환채권을 귀속시키기로 하는 약정이 있다면 실제 돈을 낸 사람을 예금주로 할 수 있다"며 "예금주 이씨가 아닌 남편을 실제 예금주로 하는 약정을 했다고 판단된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했다.
대법원은 그러나 금융실명제 하에서는 예금명의자만 예금주로 인정받을 수 있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금융실명법에 따라 실명확인 절차를 거쳐 예금계약을 체결한 경우에는 예금명의자를 계약 당사자로 봐야 한다"며 "예금출연자를 계약 당사자로 보려면 출연자에게 예금 반환 청구권을 귀속시키겠다는 명확한 의사의 합치가 있는 극히 예외적인 경우로 제한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자금출연 경위나 거래 인감 및 비밀번호의 등록ㆍ관리 등을 근거로 김씨를 예금주로 판단한 원심의 판결은 금융실명제 하에서의 예금계약의 당사자 확정 및 해석에 관한 법리를 오해했다"며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박시환 대법관은 개별의견을 통해 "실명 확인을 거친 사람 외의 다른 사람을 예금주로 하는 계약을 인정하는 것은 금융실명법 취지에 정면으로 반한다"며 "예금명의자만이 계약의 당사자"라고 예외적인 경우를 전혀 인정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