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장사 임원마다 연봉을 얼마나 받나." 현행 자본시장법 아래에선 상장사가 이런 질문에 답할 의무가 없다. 임원이 받는 급여가 얼마인 지 공개된다면 일한 만큼 정당하게 돈을 가져가는 지도 알 수 있겠지만 법은 임원 수와 보수 총액만 공시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임원 10명이 받은 연봉을 합쳐 모두 50억원이란 식으로만 공개하면 되는 것이다. 이를 통해 1인 평균 5억원을 받았을 것으로 어림할 수 있지만 개별 금액은 알 수 없다.
문제는 이런 식으로 임원급여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지배주주가 임원보수란 명목으로 회사 재산을 처분해 사익을 추구할 수도 있다는 데 있다.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이런 문제점을 없애기 위해 임원보수를 총액이 아닌 개인별로 공시하도록 하는 '자본시장법 일부 개정안'을 11일 발의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임원이 회사로부터 독립성을 강화할 수 있도록 이 법안을 마련했다"며 "지배주주가 임원보수 명목으로 우회배당을 하거나 회사 재산을 처분하는 것과 같은 사익 추구를 막는 데 반드시 필요한 작업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개정안은 상장사가 사업보고서에 임원에 대한 총보수만 기재하도록 했던 것을 임원에 대한 개별보수를 기입하도록 고쳤다.
실제 연초 18개 시중은행이 정부로부터 대외채무 지급보증을 받으면서 은행장이 받는 연봉을 삭감하기로 결의했지만 개별보수 규모를 모르기 때문에 삭감폭이 적정한 지 알 수 없었다. 이정희 의원은 "이런 이유로 임원별 공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며 "이전부터 제기돼 온 문제인 지배주주가 보수결정을 좌우하는 문제도 임원별로 보수가 공시돼야 방지될 수 있다"고 전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책임경영은 물론 임원보수와 업무간 상관성도 향상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다.
시민단체도 이런 개정안을 반기고 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이날 논평에서 "예전에도 임원별보수를 기재하도록 하는 법 개정이 추진된 바 있지만 기업정서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폐기됐다"며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국회 심의를 거쳐 조속히 통과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2003년 12월 이전 상황을 보면 임원별보수가 금감원 서식에 따라 공개돼 왔고 같은해 말 개정된 증권거래법도 임원보수를 공개하되 대상과 범위를 시행령에 위임하기로 했다. 김 소장은 "이를 고려할 때 자본시장법에서 임원보수 총액만 공개하도록 한 것은 당시 개정취지와 위임범위를 일탈한 것으로 여겨진다"고 전했다.
특히 아시아 13개국에 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재작년 조사한 결과를 보면 중국과 홍콩, 인도, 싱가포르를 포함한 주요국가가 임원별보수를 공개하고 있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선진 금융시장에서도 임원별보수가 공시된다. 유독 우리만 임원별보수를 공개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셈이다. 오히려 이번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세계 주요국가가 택한 경영정보 공개 수준에 맞추려면 국회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반드시 통과시켜야 한다. 이는 해외 금융시장과 경쟁하기 위해 자본시장법을 제정한 취지와도 부합하는 것이다. 차제에 국회는 자본시장법 시행령을 통해 임원별보수에 대한 공개뿐 아니라 개별 보수 내역과 동일업종 보수 비교도 공시항목에 넣도록 해야 한다. 이는 임원보수가 성과에 연동돼 결정되는 지를 판단할 수 있는 최소 장치이기 때문이다.
조준영 기자 jj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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