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기의 수레바퀴] 위기설

2009-03-03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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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불황’을 입에 달고 살다보니 이젠 웬만한 불황들은 그리 큰 감동을 주지 못하는 듯하다. 무감각해진 것일까?

그러던 차에 최근 위기설이 흘러나오고 있는 한 회사의 임원을 만나게 됐다. 모기업이 미국에 있는 한국내 자동차 회사의 홍보담당 부사장인 이 사람은 미국 본사로부터 수출대금을 제대로 못 받아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는 논란에 대해 거칠게 부정했다.

지난달 24일 군산에서 있었던 수출 기념식 이후 열린 기자회견에서의 일이다.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미국 자동차 회사들의 유동성 위기와 미국 정부의 지원, 자구책 마련 등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면서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첫 수출 기념식인 만큼 수출 차량에 대한 질문이 오가길 회사 홍보담당 부사장은 간절히 원했다. 이미 며칠 전 기자들에게 위기를 적극 부인한 터였다.

회견이 시작되면서 그의 예상은 빗나갔다. 미국 본사와 한국 기업 사이의 대금 결제 문제나 유동성 위기 상황, 정부와 채권은행에 자금 지원을 요청한 사실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마케팅 담당 부사장도 적극 해명하고, 옳은 것과 잘못된 것을 콕콕 짚어가며 이야기 했다. 요지는 언론에서 이야기 하는 문제들은 하나도 맞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 흥분 잘하는 이 홍보담당 임원이 기자들을 향해 한 방 날렸다.

그는 “절대 사실이 아니다. 관련 사항은 밤 12시라도 언제든지 물어보면 확인 해주겠다. 사실도 아닌 회사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묻지 말고 (수출하는) 차에 대해 물어보라”고 강조했다.

기자들은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워낙 흥분 잘 하시는 외국인 임원이신지라 조용히 물러났다. 정말로 문제가 없구나, 하는 생각들을 뇌리에 슬쩍 얹어놓은 채.

그로부터 며칠 후, 채권은행에 1조원의 자금 지원을 요청했던 이 회사가 여유를 부리는 이상한 행동을 보였다. 급하다면서 채권은행이 요구한 자료 대신 기초적인 자료만 내놓은 것이다.

자금부족 현황이나 향후 현금흐름 전망 등 자금지원 필요성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는 전혀 제출하지 않았다. 이미 인출한 신용공여한도(크레딧라인) 사용처도 밝히지 않았다. 채권은행 관계자가 “기초적인 자료만 제출했다. 자금지원에 필요한 자료를 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안 낸 것이나 마찬가지다”라고 했을 정도다.

무슨 일일까? 혼돈이 왔다. 정말 위기가 아닌가 보다. 그런데 자금 지원 요청은 왜 할까? 아마 자료를 제대로 제출하면 자신들이 위기라는 걸 입증하게 되니 숨기고 있는 지도 모른다. 결국 채권은행이 추가 자료를 내놓으라고 요청했지만, 자금 지원 여부는 부정적이다. 위기설을 스스로 키운 꼴이 됐다. 부사장님, 전화 받으세요.

김훈기 기자 bom@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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