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의 나날들
“20년 전의 종합상사의 위상은 대단했죠. 제가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했을 때의 1지망도 물론 삼성물산이었습니다”
삼성 구(舊) 계열사에서 20년째 재직 중인 A부장은 지금까지도 상사맨에 대한 동경을 갖고 있다. 그는 결국 2지망으로 써냈던 회사에 재직 중이지만 아직도 이때의 아쉬움을 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1975년, 정부가 강력한 수출드라이브 정책의 일환으로 종합상사를 설립하며 ‘상사맨’은 탄생했다. 현대, 삼성 등 당대 최고 그룹들은 각 계열사의 해외시장 개척을 이들에게 맡겼고, 이에 부응한 상사맨은 1990년 중반까지 100배가 넘게 성장하며 대한민국호(號)의 선봉에 섰다.
특히 종합상사의 한국 수출 기여도는 절대적이었다. 종합상사의 위상이 정점에 달한 1994년 7대 종합상사의 국내 총 수출의 절반에 가까운 44%(418억 달러)에 달하며 종합상사의 자부심은 극에 달했다.
이 같은 상사들의 고속 성장의 주역은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던 상사맨이었다. 냉전 시대의 중국과 소련, 한국에 있어 미지의 땅이나 다름없었던 중앙아시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도 다름아닌 상사맨이었다.
◆설 곳 잃은 종합상사
그랬던 종합상사가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그로 인한 그룹 계열사 분리로 인해 그 위상이 점차 떨어지기 시작했다. 또 상사를 통해 해외 역량을 쌓아오던 제조업체들이 직접 해외무역과 신시장 개척에 나서며 종합상사의 입지는 더욱 줄어들었다.
특히 2003년을 기준으로 회계기준이 변경돼 수수료를 제외한 단순거래 대행금액은 더 이상 매출로 인정하지 않게 됨으로써 ‘가시적인’ 매출이 급감했다. 기준 변경 전 40조원대의 매출을 올리던 삼성물산(건설부문 포함)의 경우, 변경 후 10조원 이하로 떨어졌다.
이 같은 조치는 제조사와 함께 이중으로 처리되던 회계기준을 바로잡은 것에 불과했지만, 이로 인해 1인당 약 월급의 200배의 매출을 올렸던 상사맨의 신화는 옛 말이 되어 버렸다.
◆진화하는 종합상사
하지만 이 같은 위기를 거치며 종합상사는 오히려 내실있게 점차 진화하기 시작했다.
대우인터내셔널 관계자는 “그때의 위기를 통해 오히려 마진이 적인 단순대행 업무에서 떠나 수익성 높은 사업 위주로의 재편이 가능해졌다”며 “매출은 전성기에 비해 낮아졌지만 영업익 등 수익구조는 오히려 그때에 비해 높아졌다”고 말했다.
그 결과 최근 5년간 과거의 실속없는 규모의 경제를 떠나 실속있는 성장을 이어오고 있으며, 2009년 들어서는 미래 산업에 대한 가시적인 성과도 잇달아 나오고 있다. (2부에 계속)
김형욱 기자 ner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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