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여 년간 김 추기경과 인연을 유지해온 신치구(77) 전 국방차관은 18일 연합뉴스와 인터뷰에서 "김 추기경은 지위가 높아져 자신도 모르는 교만함 때문에 이웃에 잘못을 저지르지나 않을까 늘 경계하고 염려했다"며 "그래선지 가까운 사람들을 만나면 '내 기도만으론 부족하다'며 자신을 위해 기도해주라고 요청하곤 했다"고 말했다.
경북 김천 출신으로 조부 때부터 천주교 집안이던 신 전 차관은 육군 중장으로 예편한 뒤 1987-88년 국방차관을 지냈다. 이후 2년간 신학원에서 공부하고 나서 1992년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를 설립해 소장으로 활동해 왔다.
대구에서 군 복무 중이던 1965년 당시 가톨릭신문사 사장으로 재직하던 김 추기경을 처음 만났다는 신 전 차관은 1970년대에 육사로 근무지를 옮기면서 명동성당으로 김 추기경을 자주 찾아갔다고 말했다. 이후 그가 사단장과 군단장 등 현역으로 근무할 때는 김 추기경이 군부대로 찾아와 테니스를 함께 하는 등 가깝게 지냈다.
신 전 차관은 "김 추기경은 만나면 만날수록 인간적 매력이 넘쳤던 분"이라면서 "이는 상대방을 언제나 편하게 대해줄 뿐 아니라 설령 잘못이 있더라도 포용하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는 등 배려하는 마음이 저절로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김 추기경의 그런 매력에 반한 그는 국방차관을 그만둔 뒤에 다른 직책을 맡지 않고 가톨릭신앙생활연구소를 설립해 한국 천주교 실태연구에 매진했으며, 김 추기경이 팔순을 맞은 2001년에는 강론을 18권짜리 문집으로 엮어 펴내기도 했다.
신 전 차관은 "김 추기경이 강론한 원고 4천500여 편을 책으로 엮으면서 그 가운데 90%가량은 직접 원고를 썼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면서 "특히 주교가 신자들에게 베푸는 견진성사(가톨릭 교회의 7성사 중 세례성사 다음에 받는 의식)는 똑같은 내용으로 해도 될 텐데 각 성당의 상황에 따라 매번 다르게 했다는 것을 책 편집 과정에서 확인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된지 180년이 되던 1964년까지 천주교 인구는 전체 국민의 1%도 안 됐으나 지금은 10%를 넘는다"며 "김 추기경의 가장 큰 업적은 한국 천주교 지도자로 있으면서 교회를 크게 성장시킨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김 추기경은 어려운 고비마다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했으며, 명동성당이 민주화의 성지로 자리 잡은 것도 그분이 계셨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김 추기경이 지난해 7월 강남성모병원에 입원한 이후 한 달에 두세 번은 문병을 갔다는 그는 "입원한 이후 두 달 정도까지는 애창곡인 김수희의 '애모'를 불러달라고 하면 흔쾌히 부르곤 했다"면서 "언젠가 장애인 행사에 참석했던 김 추기경이 '나랑 사진 찍고 싶죠'라며 장애인들과 기꺼이 어울리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며 애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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