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누고 베풀고 떠나는 길위의 인생

2009-02-03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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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택 예술의 전당 사무처장)

얼마 전 차를 몰고 지방으로 가던 중 시골장이 서있는 것을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잠시 들렀다.

수 많은 물건들의 정겨운 흥정 한켠에는 광대분장을 한 작은 공연판이 벌어지고 있었다. 명절이 다가와서인지 떠들썩한 분위기가 옛 향수를 느끼기에 충분했었다. 광대의 공연을 보다보니 문득 예전에 봤던 이탈리아의 ‘길’이라는 영화가 머리에 떠올랐다.

주인공인 잠파노와 젤소미나가 돌아다니며 겪는 일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1954년 안소니퀸과 줄리에타 마시나가 주연하고 이탈리아의 영화감독 페데리코 펠리니가 메가폰을 잡은 흑백영화로 그 시대로서는 새로운 기법들을 많이 적용한 작품 중 하나로 기억된다.

여주인공 젤소미나는 가난하고 딸 많은 집에서 태어난 소녀. 그녀의 어머니는 1만 리라를 받고 떠돌이 광대이자 차력사인 남자주인공 잠파노에게 젤소미나를 넘긴다.

거기서부터 젤소미나와 잠파노의 길고 긴 여정은 시작된다. 젤소미나의 어수룩함 때문에 안소니 퀸이 분한 잠파노는 그녀에게 항시 면박을 주고 폭력을 행사한다.

하지만 의지할 데 없는 젤소미나는 스톡홀름신드롬에 걸린 것처럼 점점 더 잠파노에게 정을 주기 시작한다. 폭력적이던 잠파노 역시 젤소미나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기 시작한다.

어느 날 잠파노와 젤소미나는 길을 가던 중 잠파노와 사이가 나빴던 과거 서커스단의 동료 나자레노를 만나게 되는데 결국 말다툼 끝에 나자레노를 살해하고 만다.

그 장면을 본 젤소미나는 충격으로 인해 이내 정신이 이상해진다. 열흘이나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젤소미나는 이제 잠파노에게는 짐이 되어버렸다. 이내 잠파노는 젤소미나를 두고 도망치고 만다.

그 후에도 잠파노는 서커스단과 함께 여러 마을을 찾아다니며 차력을 보여주며 먹고 산다.

어느 날 길을 가던 중 과거에 젤소미나가 연주하던 곡을 그 마을에 살고 있는 여자가 흥얼거리는 것을 듣게 되고 잠파노는 그녀에게 젤소미나의 행방을 묻는다.

하지만 젤소미나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 영화는 잠파노가 술에 취해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끝난다.

허무주의 그림자 끝자락을 밟는 듯 한 이 영화의 관점은 제도권 내보다는 밖에서 보는 관점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시각 때문인지 감독 페데리코 펠리니는 이 영화를 통해 자전적 요소를 너무 극명하게 노출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영화에서 두 주인공이 오토바이 삼륜차를 타고 가던 길은 무엇을 상징하는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길은 인생을 상징하는 사례가 많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로 길은 우리인생을 상징한다. 이 영화에는 허무주의를 상징하는 명대사가 있다.

잠파노와 젤소미나가 하룻밤 묵어갈 요량으로 수녀원을 찾았을 때 수녀는 젤소미나에게 먹을 것을 주며 “이곳 수녀원은 저의 두 번째 집이죠. 우리도 길을 떠난답니다. 집착하지 않으려고 2년에 한 번 씩 우리는 집을 바꾸죠. 사람들은 한그루의 나무나 풀 한 포기에도 집착을 하죠”라고 말이다.

이 말의 뜻은 천주교의 교리를 바탕으로 한 말인데 우리말로는 인생무상(人生無常)이나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사람이 태어나면 꼭 죽는다는 대명제를 전제로 생각했을 때 이 영화는 인생의 허무함을 그리는 영화이다. 하지만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했다.

사실 이 말은 우리 주변에 대한 배려가 숨겨진 말이다.

내가 죽고 난 후 이 세상에는 내가 관여할 부분은 끝나지만 다른 사람의 남겨진 인생을 위해 살아생전에 내 인생의 일부라도 할애해서 주변사람을 이롭게 하여 나에 대한 기억을 좋게 남기라는 뜻일 게다.

현대에서 길은 단순히 인생 말고도 여러 의미를 해석할 수 있다.

인생이라는 길을 가면서 주변을 배려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자. 남을 이롭게 하는 길 또한 예전보다 매우 다양해졌다.

배려의 가장 쉬운 방법으로는 나눔의 방법이 있다. 내가 가진 것을 남을 위해 사용하는 것으로 나누어 주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 모두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한 이 방법은 과거 괴로움과 외로움을 상징하던 길을 행복하고 즐거운 길로 바꿔줄 수 있는 방편이기도 하다.

우리가 걸어왔던 길보다 걸어가야 할 길이 더욱 즐겁기를 기대한다. 과거 자신의 이름보다는 자신을 봐주는 이들의 즐거움을 더욱 중시했던 이름 없는 예술가들의 순수한 사명감을 생각한다. 올해는 보여주는 사람과 봐주는 사람 모두 행복한 길을 걸을 수 있기를 바란다.

새해가 밝았다. 올해는 과거 지나온 길을 걸을 때와는 달리 새로운 마음을 가슴에 품고 길을 걸을 수 있길 바란다.

무성영화 시대의 찰리 채플린을 연상케 하는 젤소미나의 천진난만한 얼굴을 기억난다. 그리고 우리가 그 길을 걷는 이유가 나만을 위한 길인지 나와 남이 함께 즐거울 수 있는 길인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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