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소 공공기관 지정 위헌 논란..파문 확산

2009-01-29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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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29일 증권선물거래소를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것으로 알려지자 거래소와 일부 시민단체가 강력히 반발하는 등 파문이 일고 있다.

거래소는 순수한 사기업의 공공기관 지정에 위헌 소지가 있다며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공언했고, 노조는 총파업을 예고했다. 공공기관 지정에 맞서 노사가 공동으로 전면투쟁에 들어갈 것임을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정부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공공기관운영법)을 근거로 방만 경영 지적을 받아온 거래소의 예산을 조정하고 평균 연봉 1억1천만원 수준의 임직원 급여를 손질할 것으로 예상돼 노사의 대정부 투쟁이 장기화할 전망이다. 

◆공공기관 지정 위헌 논란
거래소의 공공기관 지정은 지난해 9월 처음 공론화됐다. 당시 감사원이 거래소가 독점으로 손쉽게 돈을 버는 공적 기관임에도 감시 사각지대에 놓인 탓에 방만 경영을 일삼을 수 있었다며 공공기관 지정의 필요성을 재정부에 건의했기 때문이다.

이후 금융위원회는 주식ㆍ선물 중개에 따른 독점 수수료 수입이 전체 수입의 65%(2008년 기준)에 달해 공공기관 지정 요건에 해당하고, 증권예탁원과 코스콤 등 거래소 자회사들이 공공기관인 마당에 모회사만 사기업의 권리를 누린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입장을 보였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거래소는 평균 인건비가 1억1700만 원이고 특별한 영업이 불필요함에도 1인당 영업비용을 2억8300만 원이나 지출했다.

유가증권시장 독점 개설권과 유가증권 상장 및 폐지, 불공정거래 단속, 회원사 및 임직원 징계 등 공적 기능을 수행한다"며 공공기관 지정의 당위성을 주장했다.

하지만 거래소는 소유구조로 볼 때 순수한 사기업인 만큼 공공기관 지정은 재산권 보장을 규정한 헌법에 어긋난다고 반박한다.

거래소는 1956년 설립돼 1962년 주식회사로 전환했고 이듬해인 1963에는 정부가 지분 68.1%를 보유한 공공기관으로 바뀌었다. 이후 1988년 정부 지분을 민간에 매각해 `완전 민영화'가 됐고 2005년에는 코스닥시장, 선물거래소 등과 통합됐다. 주주는 증권사와 선물회사이고 정부 지분은 전혀 없다.

거래소는 이 대목을 집중적으로 문제로 삼았다. 순수한 사기업을 공공기관으로 지정해 예산과 인사를 통제하려는 것은 명백한 위헌적 발상이라는 것이다.

정부가 거래소 이사장을 비롯한 임원을 임명하면 헌법이 보장하는 재산권으로서 주주의 임원 선임권을 침해하고 사기업의 경영 통제와 관리는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긴박한 경우로 제한된다는 점을 위헌 논리로 삼았다. 

◆국제흐름 역행 여부도 쟁점
정부는 외국과 국내 거래소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으며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더라도 동북아시아 금융허브로 발전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견해다.

금융위 관계자는 한국광물자원공사가 글로벌 자원전쟁 시대를 맞아 각종 위험이 도사리는 아프리카와 남미 등으로 진출해 공격적인 투자로 눈부신 성과를 올린 사례를 본보기로 제시했다.

사기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단기적인 주주 이익에 얽매이지 않고 자원 확보전에 뛰어들 수 있었다는 것.

그는 거래소처럼 상장기능과 시장 감시기능을 분리하지 않고 함께 가진 곳은 일본을 제외하고 세계 어디에도 없다며 공공기관 지정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그는 또 "거래소가 상장 수수료를 독점하고 있고 시장감시기능을 자율규제기구로 전환하라는 요구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공기관이 되더라도 주주 권한은 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거래소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모든 거래소가 우리 거래소와 같이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으나 정부가 경영에 관여하는 경우는 정부가 과반 지분을 가진 슬로바키아뿐이란 점을 들면서 주식회사인 거래소의 경영 자체가 공적인 성격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공공기관으로 지정되면 보수적인 기업 운영이 불가피해 자본시장의 발전을 저해하고 외국인의 신뢰를 떨어뜨려 국제경쟁력을 잃게 된다는 주장도 했다.

거래소측은 "공공기관 지정은 한국 자본시장 전체에 대한 정부 통제로 외국인들에게 비치기 때문에 한국 시장에 대한 외국의 신뢰가 무너지면서 우리 증시는 20년 전 `우물 안 개구리' 시절로 후퇴할 것이다"고 비난했다.

방만 경영 감시 문제는 금융위원회 감독이나 금감원의 포괄적 검사기능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데 공공기관으로 지정한 것은 국제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교각살우나 다름없다고도 했다.

◆후폭풍 장기화 전망…조기진정 가능성도
거래소와 노조는 공공기관 지정에 항의해 전면 투쟁을 벌이겠다는 입장이어서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이정환 거래소 이사장은 최근 공공기관으로 지정하면 주주권리 보호 차원에서 헌법소원을 내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으며, 거래소 본사가 있는 부산 지역의 시민단체들은 공공기관 지정은 선진국에 역행하는 처사라며 반발해왔다.

노조의 반발 기류는 더욱 강경하다. 노조는 "공공기관 지정은 창의적, 역동적, 신축적 운영을 방해해 결국 세계시장에서 거래소를 도태시킬 것이다. 운영위원회와 조합원 투표 등을 통해 전면파업 등 노조의 대응 수위를 조율해 나갈 것이다"며 총력투쟁을 예고했다.

노조는 경영진이 공공기관 지정을 저지하지 못했다며 지난달 31일부터 이정환 이사장의 퇴진운동에 들어가 한 달 째 천막농성을 벌여왔다는 점에서 이사장 거취 문제도 새로운 쟁점으로 부각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앞으로 공공기관운영법에 따라 거래소의 예산 편성과 임원 선임, 직원 급여, 경영 평가, 감사 등에 관여해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경영 합리화를 통해 낭비 요인을 최대한 제거한다는 방침이어서 방만경영 등과 관련한 문책인사와 구조조정이 이뤄지면서 갈등이 더욱 증폭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부는 거래소가 스스로 공기업에 준하는 경영 혁신을 자발적으로 추진한다면 공공기관 지정이 철회될 수도 있다고 시사해 거래소의 대응 여부에 따라 파장이 뜻밖으로 조기에 진정될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은 최근 신문 기고문에서 "거래소 이사장이 직접 나서 정부를 위협하고 있다. 공공기관 지정 후에도 상장 전제조건을 수락하고 진정으로 경영개선을 위해 노력한다면 공공기관 지정이 철회되도록 관계기관에 요청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인터넷뉴스팀 new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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