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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정부의 막대한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미 은행권이 대출 규제를 강화하고 있다. |
막대한 유동성 지원에도 불구하고 돈을 풀기는커녕 금고문을 꼭꼭 닫고 있는 미국 은행권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1조 달러(약 1364조원)에 달하는 정부의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신용위기의 주범이랄 수 있는 은행권이 신용경색을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비난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이 문을 잠그고 돈을 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글로벌 금융위기는 경기 부양을 위해 노력하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물론 워싱턴 정책 입안자들을 곤경에 빠뜨리고 있다. 최근 몇개월 동안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은행들은 여전히 대출의 문을 잠그고 있다.
은행권의 대기업들에 대한 신규 대출은 최근 3개월 동안 40% 가까이 급감했다. 위드버시 모간 시큐리티스(WMS)의 에드워드 위드버시 회장은 "은행들은 극도록 신중한 상태"라고 전했다.
막대한 유동성 공급에도 은행권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재무부는 1875억 달러를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JP모간체이스 같은 대형 은행들에 투입했지만 이들의 재무제표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상태다.
정부 자금은 자본 증가와 대출 지원을 위한 것이지만 신규 대출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BoA의 케네스 루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우리는 정부로부터 15억를 달러 지원받았기 때문에 대출 받을 필요가 없다"고 밝혔다.
은행 중 일부분은 수익을 증대시키기 위해 더이상 돈을 빌리는 차입 자본을 이용하지 않는다. 반면 다른 은행들은 차입 자본을 이용하고 있음에도 매력적인 조건을 제공하는 대출업자들을 쉽게 찾을 수 없다고 말했다. 차입 자본 이용은 이익이 되는 대출을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자리매김해왔다.
미국 에너지업체 엘파소는 최근 기업들의 자금 마련이 얼마나 힘든가를 보여준다. 엘파소는 자본 지출을 16% 줄였지만 높은 부채는 수익을 더욱 감소시킬 전망이다.
은행권의 몸사리기로 재정 위기에 빠진 엘파소는 은행금리의 2배가 넘는 15%의 이자율로 5억 달러 규모의 정크본드를 발행했다. 부담이 큰 고금리였지만 생존을 위해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전문가들은 두려움이 금융시장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에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지적한다.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은행들이 자본 축적에만 열을 올리고 있으며 이는 다시 기업을 비롯해 소비자들을 위한 신용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배경이 되는 것이다.
정부 규제 아래 은행들은 자산을 기준으로 일정한 수준의 자본을 유지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큰 은행들은 최근 몇달 동안 외부 투자를 늘리고 긴급 융자를 받고 난 후 정부 자본 기준을 충분히 충족시킬 수 있게 됐지만 이들 은행의 주머니를 여는 것은 힘들 전망이다.
한편 대형 은행들은 이미 서브 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와 위험한 부채로 큰 타격을 받았지만 신용카드와 우량 부동산 대출 등에서 대형 부실 가능성이 커지는 또 다른 문제들에 직면해있다.
정부가 부실자산구제프로그램(TARP)의 남아있는 3500억 달러를 집행하더라도 은행 업계의 총 손실에 비하면 여전히 새발의 피에 지나지 않는다는 평가다.
시카고 대학 부스 경영대 애닐 카샤프 교수는 "은행들은 위험을 감수할 충분한 자본을 가지고 있지 않다"며 "앞으로 TARP II와 TARP III를 필요로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은선 기자 stop1020@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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