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일본 노사(勞使) 대표가 한자리에 앉았다. 이 자리에서 노사는 "사회 안정의 기반인 고용 안정을 위해 최대한 노력한다"
는 결의와 "실업자를 위해 고용보험을 확대하고 거주할 집을 확보해 달라"는 정부 요구를 수용한 공동성명를 발표했다.
일본 노사가 공동성명을 낸 것은 8년 만이다. 특히 도요타와 미쓰비시자동차 노사는 휴업일 보상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임금 삭감에 사실상 합의했고, 마쓰다자동차도 20% 임금 삭감안을 노사가 절충하고 있다.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자동차 기업과 유럽, 미국 등을 대표하는 대부분의 자동차 기업이 일류 브랜드로 도약한 데는 협력적·생산적인 노사관계로부터 비롯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 자동차 회사들은 1980년대까지 강성노조의 잦은 파업으로 생산성에 차질을 빚은 바 있다.
하지만 치열한 업계 경쟁으로 각 기업이 경영위기를 겪으면서 1990년대부터 파업을 자제하고 근무시간 연장에 합의하는 등 협조적인 노사관계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도요타와 혼다, 폴크스바겐 등은 노사 화합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에서 영역을 넓히고 있으며 제너럴모터스(GM)를 비롯한 미국 빅3도 전미 자동차노조(UAW)의 동의 아래 체질 강화를 위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폴크스바겐은 지난 90년대 초반 일본업체들의 급부상과 경기불황으로 경영위기를 겪었다. 이에 따라 구조조정 및 생산기지의 해외 이전 등의 비상경영체제에 돌입했다.
이 같은 구조 조정안에도 불구, 노조는 회사의 위기경영에 동참해 근로조건을 양보하는 등 회사의 방침에 협조했다. 회사는 이에 고용안정을 보장하며 노사간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체제를 확립할 수 있었다.
지난 2004년 노사협약에서는 회사측이 6개 공장의 10여만명의 고용을 오는 2011년까지 보장했으며 노조는 2007년까지 임금 동결과 근로시간의 유연성 확대 등 협조를 약속했다.
도요타 역시 미국 제너럴모터스(GM)을 제치고 세계1위 자동차기업으로 도약한 데는 협조적 노사관계가 밑거름이 됐다.
도요타는 55년간 단 한 건의 노사분규 없이 고용유지와 일자리 창출을 우선시 함에 따라 도요타만의 생산방식을 구축해 세계 자동차 기업과의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
지난 1953년 파산위기에 놓였을 때 도요타도 회사 존폐의 위기를 겪으며 대립적 노사관계가 사라졌다. 노조는 회사가 어려우면 현장도 어려워진다는 점을 직시한 것이다.
특히 지난 2005년에는 일본에서 최고의 수익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자발적으로 기본급을 동결하고 성과급 축소를 제안했다.
노조가 엔고 및 경쟁 심화 등 경영환경 악화에 대응해 회사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 하에 결정 한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세계 자동차 기업의 위기극복 선례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측은 실질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노조는 비전 실현을 위해 나서는 상생협력의 자세를 갖춰야 한다"며 "지금부터라도 노사가 신뢰 구축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말했다.
김영리 기자 miracle@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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