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세간의 이목이 세브란스병원에 집중된 적이 있다. 약 8개월동안 식물인간에 가까운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던 환자의 존엄사 인정여부 때문이었다.
존엄사란 자발적으로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고, 의료기술에 의지해 생명을 연장시키고 있는 환자에게 의료행위 중 일부를 중단시켜 생명연장을 끊는 일종의 소극적 안락사를 말한다.
뇌 기능의 일부만 유지한채 자발호흡이 미약해 인공호흡기 치료를 받고 있던 환자 김 모(76세, 여)씨의 보호자(가족)는 세브란스병원측에 환자의 연명치료 중단을 요구했다. 그러나 병원은 의학적 판단과 법적인 제한 사이에서 고민하다 결국 이를 거부했다.
그러나 서울서부지방법원은 보호자측의 요구를 수용, 지난해 12월 4일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떼라고 판결했다.
이에 병원측은 종교∙윤리적 측면과 사회적인 문제, 의료법적인 기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했다. 환자에 대한 치료를 계속하면서 법원의 최종판단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세브란스병원은 광혜원, 제중원에서 시작된 124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 의학교육기관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것을 기본이념으로 삼는 기독교 병원이다.
이처럼 인간의 생명을 사람이 판단할 수 없다는 기독교적 가치관과 아직까지도 정립되지 않은 존엄사 기준에 대한 법적인 제한 때문에 의사들은 존엄사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특히, 우리나라는 가족이라는 특별한 문화가 있다. 환자 가족들의 요구에 의해 연명치료를 중단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발생해 가족 중의 한 명이라도 병원측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면 병원이나, 담당 주치의는 그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게 현실이다.
존엄사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수 없고, 복잡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미국 등 선진국의 경우 제한적인 조건하에서 존엄사를 인정하고 있다. 특히 중환자일 경우 본인 목숨을 스스로 결정하도록 입원할 당시부터 사전의사결정서를 작성토록 법규화하고 있다.
결국, 시대적 흐름으로 볼 때 존엄사는 인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세계적 추세도 그렇다. 그렇다고 생명 경시풍조를 방치해서는 절대 안된다.
그래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존엄사를 인정하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의료비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문제다.
반대로 존엄사를 받아들였을 때 병원이나 담당 주치의에게 사후 책임을 묻지 않도록 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
이와 관련 세브란스병원 의료법윤리학과 김소윤 교수는 “목숨은 가족이나 의사가 아닌, 환자 본인이 결정하는 것이 절대 정답”이라며 “따라서 환자가 사전의사결정서를 작성하고, 그렇지 못할 경우 병원윤리위원회에서 결정한 존엄사에 대해서는 의료인에게 사후책임을 묻지 않도록 규정을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세브란스병원의 경우를 계기로 존엄사가 엄격한 기준하에 사회적으로 인정받게 되는 초석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박재붕 기자 pjb@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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