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할 때가 되면 하고 안 할 때가 되면 안 하면 되지 미리 안 한다 할 필요가 있느냐”며 대운하 부활 가능성을 내비쳤다.
국민이 원한다면 포기하겠다던 그 대통령과 동일인물인가 의구심이 든다.
대운하뿐이겠는가. 애초 경제정책도 ‘고환율ㆍ성장위주’를 외치다가 경제위기로 여론이 악화되자 슬그머니 ‘물가관리’로 말을 바꾼 전력도 있다.
말 바꾸기를 밥 먹듯 하는 것은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야당시절 개혁특위까지 만들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상임위화를 강력히 촉구했던 한나라당은 15일 “예결위 상임화와 관련해선 더 이상 논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공교롭게도 민주당은 같은 날 예결위 상임위화를 당론으로 정했다. 물론 17대 국회 당시 “행정부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 될 수 있다”며 반대했던 기억은 정쟁에 묻혀 까마득하게 잊은 모양새다.
그래도 해명만큼은 정부나 정당이나 청산유수다.
정부에선 “지금 추진하는 4대강 정비 사업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뉴딜정책이라 할 수 있고 대운하와는 성격이 엄연히 다르다”고 항변한다. 대통령 발언에 대해서도 ‘그 때와 지금이 같은 상황이냐’고 되묻는다. 여야는 예결위 문제에 대해 사전에 짠 듯 작금 경제위기를 동시에 들먹이면서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물론 다 나름대로 일리는 있는 얘기다. 하지만 60%가 넘는 반대 여론과 확대되는 대운하 부활의혹, 그리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추락하는 지지도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공자도 ‘논어’에서 강조했듯 가장 큰 문제는 위정자에 대한 국민신뢰다. 어떠한 미사여구로 치장한들 국민은 당장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다.
기본적으로 대통령이 수시로 말을 바꾸는데 어느 나라 국민이 정부정책을 믿고 따르겠는가. 당장 국민들은 이력서만 100번 이상 쓰고 가게 문을 닫고 있는데 이를 위해 집행해야 할 중요한 국가예산을 정쟁도구로 사용하는 국회를 누가 신뢰하겠는가.
경제가 총알이라면 방아쇠를 언제 당길지 결정하는 게 정치다. 그러나 방아쇠를 당기는 중요한 역할이 신뢰를 잃는다면 경제위기 극복은커녕 글로벌 경제전쟁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안광석 기자 novu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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