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채용시장에 전례를 찾기 힘든 한파가 몰아닥치면서 정부의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번 한파는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공공기관에 대한 개혁 바람과 정원 동결 방침 등이 뒤엉키면서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심지어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 슬로건과, 방만경영으로 얼룩진 공공기관의 체질을 바꾸려는 '선진화' 정책이 서로 충돌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 고용 한파 중심에 선 공공기관
지난 10월 취업자 증가폭은 정부 목표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9만7천명으로 떨어졌다. 이처럼 전체 고용시장에 찬바람이 거세지고 있다면 공공기관의 채용은 아예 얼어붙은 상태다.
공공부문도 예년이라면 지금이 정기 공채 시즌이겠지만 올해는 아예 신규 채용을 포기한 공기업이 많다. 대표 공기업인 한국전력은 하반기 공채를 못했고 지난해 400명을 뽑았던 한국수력원자력과 각각 195명과 130명을 채용한 주택공사, 토지공사는 올해 채용계획이 없다.
문제는 공공기관이 전체 고용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고 상징성이 크다는 점이다. 공공기관 종사자가 26만명에 달할 정도로 많고 '신이 내린 직장'이란 명성 만큼이나 취업준비생들의 선호도가 높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예년에도 공공기관 입사는 '좁은 문'이고 '바늘구멍'이라는 말로 비유됐지만 이번 가을에는 아예 '바늘구멍'조차 보이질 않을 정도여서 취업준비생들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더욱이 내년 전망도 어둡다. 현재 실업률은 3.0% 수준이지만 한국개발연구원은 내년 상반기 실업률이 3.7%까지 치솟을 것으로 전망했다. 고용시장이 악화일로를 치닫고 있고 그 중심에 공기업들이 서 있는 셈이다.
◇ 개혁 바람에 채용 '뚝'..서로 '네 탓'
공공기관이 새 일꾼 선발을 주저하거나 포기한 데는 경기침체에 따른 불확실한 경영환경, 정부의 정원동결 발언, 공공기관 선진화 계획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지만 정부나 노조에 대한 눈치보기도 일조한 것으로 보인다.
한승수 국무총리는 지난 달 28일 국무회의에서 "공공부문도 보수와 정원동결을 포함한 과감한 경영효율화 방안을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 이 발언은 공무원 보수의 동결 이후 예고된 일이었지만 공기업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경영 효율화를 강조한 원론적인 발언이었지만 공공기관 입장에서는 보수와 정원동결에 방점을 찍으면서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한 공기업 관계자는 "정원과 인건비를 동결하라는데 어떻게 채용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정부는 현원이 아닌 정원 동결을 강조했고 필요하면 신규 인력도 뽑으라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지만 공기업 입장에서는 현원 동결로 해석하고 채용을 꺼리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내년도 공기업 예산편성지침에서 총인건비 동결 원칙을 내세우고 있는 점도 악재가 되고 있다. 다른 공기업 관계자는 "총인건비를 동결한 만큼 정원 내에서라도 인력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은 효율 10% 향상, 통폐합, 기능조정 등을 추진 중인 정부의 공공기관 선진화계획과 맞물려 내년 상반기 채용 전망까지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통합 방침이 발표된 토지공사와 주택공사, 기술보증기금과 신용보증기금이 모두 올해 신규 채용을 포기한 것과 한국전력이 경영 효율화 차원에서 조직 개편을 추진하면서 하반기 채용을 못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통합하면 중복업무에 대한 자리가 줄어들 수 밖에 없고 조직을 개편 할 경우 그 방안이 확정돼야 인력수요가 확정되는 만큼 현재로선 인력채용이 어렵다는 게 해당 공기업들의 설명이다.
여기에는 개혁과 구조조정의 칼바람이 부는 가운데 공격적인 채용에 나섰다가 자칫 미운털이 박힐 수 있다는 공공기관들의 우려도 뒤섞여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와 다른 공공기관에 대한 눈치보기가 심각하다.
아울러 지금 사람을 뽑았는데 경영 효율화에 따라 일부 인력의 감축이 불가피해질 때 생길 수 있는 난감한 상황에 대비해 정부 방침을 핑계로 신규 채용을 꺼린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 공공기관이 새로 사람을 뽑았다가 노조에서 항의를 받은 사례도 있었다"며 "노조는 새로 사람을 뽑으면 구조조정할 때 더 많이 해고해야 하므로 이런 반응을 보였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이런 상황을 놓고 공기업이 신규 채용 없이도 돌아간다는 점은 그동안 인력 운용의 중복이나 비효율이 심했다는 것을 반증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 명확한 채용지침 필요
채용 축소현상을 놓고 정부는 공공기관 탓을, 공공기관은 정부 탓을 하는 모습도 있다.
재정부 당국자는 "경영효율화의 주목적은 사람을 자르는 것이 아니고 효율을 높이는데 있고 그것도 당장의 성과가 아니라 중기적 목표를 세우라는 것인데 기관들이 지나치게 자기방어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영 효율화와 채용을 병행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경영 효율화의 대표적 방법이 감원이나 인력 구조조정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정부 관계자도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정부 목적과 기관의 경영효율화를 병행하는 게 말은 쉽지만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운 과제"라며 "그래도 경영효율화나 일자리 창출 모두 필요하므로 권유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공공기관의 혼선을 줄일 수있게 정부가 신규 채용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하루빨리 확립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적어도 공공기관들이 정부의 모호한 입장을 핑계로 삼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선진화 계획의 조속한 추진도 중요한 과제다. 특히 기보-신보와 주공-토공 통합 문제에 대해서는 신속한 결론을 내려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공공기관이 고용 창출에 앞장서야 한다는 지적도 힘을 받고 있다.
손민중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원은 "경영효율화가 중요하지만 지금 경기에선 적극적으로 할 상황은 아닌 것 같다"며 "일자리는 소득과 직결되고 소득은 결국 경기와 연결되는 만큼 정치적인 차원에서 접근해주는 게 옳으며 현 상황에선 공공부문의 일자리가 창출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