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와 원화 부족으로 금융시장 `패닉'(심리적 공황)을 초래했던 은행권이 이제는 건전성 악화 우려로 우리 경제에 큰 부담을 주고 있다.
특히 시간이 흐를수록 기업들의 부도 가능성은 커지고 있으며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 은행의 건전성 문제는 우리 경제의 또 다른 `잠재적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게다가 제2금융권에서 저축은행 뿐 아니라 할부금융사, 카드사, 보험사 등도 자금 조달에 적지않은 어려움을 겪는 등 궁지에 몰리고 있다.
9일 금융계와 감독당국 등에 따르면 경기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기업과 가계가 어려움에 빠지고 있으며 이는 은행의 3분기 수익성을 최악의 상태로 몰고 가면서 곧바로 은행 건전성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
국민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 비율은 2분기 12.45%에서 3분기 9.76%로 주저앉았다. 신한은행은 2분기 12.5%에서 3분기 11.9%로 떨어졌고, 외환은행은 11.56%에서 10.64%로, 기업은행은 10.49%에서 10.15%로 각각 하락했다.
고정이하 여신비율은 국민은행이 0.12%포인트, 하나은행이 0.18%포인트 상승했고 연체율은 우리은행이 0.13%포인트, 하나은행이 0.17%포인트 각각 상승했다.
국제 신용평가사들은 이런 점을 감안해 국내 은행들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무디스는 지난달 29일 SC제일은행의 재무건전성 등급 전망을 `긍정적'에서 `안정적'으로 변경한 데 이어 7일에는 외환은행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했다. 앞서 지난달 1일 국민.우리.신한.하나은행 등 4개 은행의 등급 전망을 '안정적'에서 '부정적'으로 내렸다.
하나금융연구소 정중호 연구위원은 "은행 자체적으로는 부실자산이 쌓여 있는 상태는 아니지만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면 잠재부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은행권은 제2금융권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작은 쇼크에 의해 뜻밖에 위험이 증폭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이에 따라 은행들에 고금리 특판예금의 판매 자제, 증자, 배당 억제 등을 통한 건전성 제고를 주문하고 있다.
제2금융권에서는 저축은행뿐 아니라 다른 업태의 업체들도 신용경색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할부금융회사들은 주요 자금 조달처인 회사채와 기업어음(CP), 자산유동화증권(ABS) 등의 발행이 막히면서 아사직전에 몰렸다.
할부금융사의 채권 발행 규모는 9월 7천398억 원에서 지난달에는 1천450억 원으로 20% 이하 수준으로 급감했다. 우리파이낸셜은 모회사인 우리금융지주에서 3천억 원을 수혈 받기로 했고 하나캐피탈도 계열사인 하나은행으로부터 2천억 원 규모의 유동성 지원을 받는다.
카드사의 채권 금리는 8% 중반까지 뛰어올랐고 발행규모도 지난달 6천400억 원으로 전월 대비 25.6% 감소했다. 보험회사들도 채권과 주식 등 보유자산의 가치하락 여파로 보험금 지급능력을 나타내는 지급여력비율이 떨어져 자본 확충에 나서고 있다.
한국투자증권 이준재 애널리스트는 보고서를 통해 "금융권의 잠재 위험자산이 301조 원으로 추정된다"며 "미분양 주택 63조 원, 미시행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30조 원, 통화파생상품 `키코' 계약 10조 원, 개인사업자 주택담보대출 중 담보인정비율(LTV ) 70% 이상 60조원 등"이라고 밝혔다.
하나대투증권 한정태 애널리스트는 "경기침체가 지속하면 소비가 줄어들면서 기업들이 어려움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이는 결국 은행들의 건전성을 해치는 문제가 생기는데, 정부는 지속적인 금리 인하 등을 통해 자금경색을 해소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