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결과 민주당 버락 오바마 후보가 사실상 당선되면서 남북관계에 어떤 변수로 작용할지 관심을 모은다.
독재국가의 지도자와도 직접 대화하겠다고 공언한 오바마 당선인은 `강성대국의 문을 여는 해'로 정한 2012년까지 북.미관계 정상화라는 체제의 `인프라'를 깔고 싶어할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상대적으로 좋은 궁합을 이룰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상이다.
또 민주당 정부의 특성상 `비핵화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모토로 정치적인 일괄 타결을 추진한 부시 행정부 말기의 대북 접근법과 달리 북의 아킬레스건인 인권 문제까지 테이블 위에 올린 채 단계별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철저히 지킬 수 있어 관계 정상화까지 지루한 `줄다리기'가 전개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 정부 관계자는 "오바마가 독재국가의 지도자와 대화하겠다고 한 것은 그런 방향으로 노력하겠다는 총론을 밝힌 것으로,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기 전까지 밟아야 할 단계들을 뛰어넘겠다는 뜻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처럼 중.장기적으로 북.미 관계 정상화 과정에 곡절이 있을 것이라는 예상이 있음에도 비핵화 및 북.미관계 정상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는 동안은 북한이 지금처럼 우리 당국과 대립각을 세워가며 정책 전환을 유도하려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대체적인 예상이다.
특히 대북 관계개선을 `선물' 개념이 아니라 북한을 비핵화 및 정상국가화의 길로 이끄는 수단으로 삼겠다는 오바마 진영의 대북 구상이 현실 정책으로 입안될 경우 단기적으로는 북.미관계가 가시적 성과를 보이며 순항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이들이 많다.
그런 점에서 일부 전문가는 남북관계에 극적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을 경우 오바마 임기 첫해가 끝나는 내년 말까지는 북한이 철저히 대미 관계 개선에 `올인'한 채 살길을 모색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우리 정부는 이 같은 `통미봉남'식 시나리오를 우려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고 있다.
유명환 외교장관은 4일 국회에서 "한미동맹의 질적, 양적 관계가 두껍고, 미.북간 관계가 진전되려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구체적인 방향과 북한의 전략적 결심이 증명돼야 하고, 여러 인권 문제 등 미국의 관심사가 진전돼야 할 것"이라며 북.미관계의 급속한 진전 가능성 자체를 낮게 평가했다.
그러나 북.미관계의 빠른 진전 속에 정부가 남북관계 경색을 조기에 풀지 못할 경우 한반도 문제 해결과정에서 한국이 한동안 소외될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동국대 고유환 교수는 "오바마 정부는 민주당 전통의 `개입 정책'에 따라 대북정책 기조를 설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제한 뒤 "이명박 정부는 미국 새 행정부와의 공조 측면에서라도 지금까지 해왔던 '길들이기식'의 대북정책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잘못하면 남북관계는 물론 한.미관계도 틀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조성렬 박사는 "올해 미국은 한국이 식량.비료를 제공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북에 식량을 지원했고 우리는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와 관련, 엄격한 조건을 제시했는데도 결국 자신들 입장에 따라 테러지원국 지정을 해제했다"며 "(이런 과정을 보며) 북한은 한국을 독립 변수가 아닌 대미 정책의 종속 변수로 여기면서 `미국이 바뀌면 한국도 바뀔 것'으로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만약 북.미가 관계 진전에 속도를 내는 동안 남북관계는 정체를 거듭한다면 정부로선 대북 정책의 진로를 재고해야 한다는 여론에 직면할 가능성이 없지 않아 보인다.
그런 상황이 설령 온다고 가정하더라도 `갑을관계'가 분명한 새 남북관계를 만들겠다는 현재의 원칙을 계속 유지하면서 북한이 대화하자고 할 때까지 기다리는 동시에 미국에는 `속도 조절'을 설득하는 것이 정부가 취할 수 있는 하나의 옵션으로 여겨진다.
보수 성향인 아소 다로 총리가 이끄는 일본과의 공조 활성화 가능성도 이런 옵션의 연장선상에서 종종 거론된다.
또 식량.비료 지원, 10.4선언 이행 등과 관련해 구체적인 행동에 선도적으로 나서는 방법으로 남북관계를 적극적으로 풀어나가는 것도 그럴 가능성 여하를 떠나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옵션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