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사회, 역사적 순간 숨죽여 기다려

2008-11-05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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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흑인들은 미국의 건국 이래 사상 첫 흑인 대통령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감에 만감이 교차하는 모습이다.

   노인들은 어렸을 때 심한 흑백차별을 받은 기억들을 반추하며 오바마가 당선되면 젊은 흑인세대에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에 가슴 벅차하고 있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州) 찰스턴의 한 고등학교에서 컴퓨터 전문가 조지 팔머(41) 5살짜리 쌍둥이 아들들의 손을 잡고 소중한 한 표를 행사했다.

   그는 "어렸을 때 어머니는 나에게 대통령도 될 수 있을 거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았었다"며 "그러나 오바마가 오늘 이기면 나는 내 아들에게 '언젠가 너는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거야'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아들은 내 말을 믿을 것"라고 말했다.

   오랜 기간 찰스턴 시장을 역임한 조지프 릴리 주니어(백인)도 이번 대선이 "인간이 자유롭게 진보할 수 있다는 능력을 지녔다는 것을 후세에게 보여줄 것"이라며 "미국이 어떤 나라인 가에 대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954년 대법원이 흑백분리 정책을 부당하다고 판결한 '브라운 대 토피카 교육위원회' 판례를 인용하며 판결이 나온 지 54년이 흘러 첫 흑인 대통령 배출을 목전에 둔 지금, 이번 대선은 미국이 매우 좋은 나라라는 사실을 보여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인종평등을 향한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하는 이 판결이 나온 캔자스주 토피카에 거주하는 랠프 후버(68)씨도 오바마에 한 표를 행사했다.

   그는 오바마의 출마를 미국을 위한 '청소'(cleansing)이라고 칭한 뒤 "만약 오바마를 아직 믿지 않는 사람이 있더라도 그들은 오바마를 곧 신뢰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렇게 흑인의 '승리'를 축하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미국에서 피부색은 깊고 지속되는 상처로 남아있다.

   오래전 노예무역 도시로 이름을 날린 뉴올리언스는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피해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조제타 화이트(39.여)는 카트리나의 마수에 파괴된 뉴올리언스의 재건에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일 후보를 찍기로 결심했다며 "나는 오바마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을거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가 노력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한 표를 줬다"고 말했다.

   흑인폭동이 일어났던 로스앤젤레스의 찰스 킨제이(48)는 "오바마가 출마했을 때 그가 대단하다고 생각했지만 힐러리나 다른 누군가가 그를 누르고 올라올 거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여기까지 왔다. 오 하느님, 나는 흑인 대통령 후보에게 투표를 했다"라며 아직도 흑인 대통령의 탄생이 임박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됐다'고 선언한 미국독립선언이 탄생한 필라델피아에서도 여전히 흑백차별의 상처는 깊다.

   50여년 전 필라델피아로 이주한 돌로레스 휘태커(72.여)에게 독립선언을 탄생시킨 이 역사적인 도시의 연원은 거의 의미가 없었다.

   피부색 때문에 직장을 구하는데 애를 먹었던 젊은 시절의 경험은 그녀에게 여전히 상처다.

   그는 오바마는 흑인 어린이들이 자라면 그 무엇도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그들은 이제 '나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말을 이제 진심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정치 1번지' 워싱턴DC에 사는 유진 퀸(74.여)은 아직도 어렸을 적 백인과 분리된 흑인 전용 샘물에서 물을 길어 먹던 생각이 난다.

   그는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그러나 오바마에게 투표한 것이 나 자신을 매우 좋은 사람으로 느끼도록 했다. 그가 성공했다는 사실만으로 기쁘다"고 말했다.

   퀸의 친구 로레스 올리버(68.여)씨도 새해 전날에만 술을 마시지만 이번에는 작은 샴페인을 한 병 샀다. 그녀는 이 샴페인을 따고 축하할 순간을 친구들과 숨죽여 기다리고 있다. /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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