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경제학에서는 세계경제의 질서를 국제무역과 국제금융의 두 부문으로 나누어 연구한다. 일찍이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국제무역 분야에서는 관세와 무역의 일반협정(GATT)이라는 협약을 탄생시켜 세계 각국이 관세 장벽과 비관세 장벽을 낮춰 나가면서 더 자유스럽고 더 공정한 국제교역 질서를 형성해 나가는데 노력해 왔다.
그리고 국제금융 분야 에서는 이른바 ‘브레튼우즈 체제’를 출범시켜 IMF와 세계은행을 탄생시켰고, 이들로 하여금 국제금융의 질서를 담당케 했다.
그런데 80년대 중반에 이르러 국제무역의 질서는 엄청난 도전에 직면하게 되었다. 즉 수출로 경제성장을 이룩해 보려는 수많은 개도국들이 정상적 교역방식을 따르지 않고 덤핑이나 수출보조금 지급 또는 지적재산권 침해 등의 비정상적 방식을 동원해 선진국시장을 공략하기에 바빴다.
선진국들은 그들대로 시장을 방어하기 위해 반덤핑, 상계 관세, 수입 쿼터제, 세이프 가드 등 수많은 비관세 장벽을 세워 세계 무역 질서를 교란시켰다. 뿐만 아니라 무역수지의 양극화 현상을 야기 시켜 적자국과 흑자국간의 갈등이 격화되기도 했다.
세계는 이를 위기상황으로 인식, 마침내는 86년부터 우루과이라운드라는 신 무역질서 구축작업을 벌였고, 7년의 산고 끝에 세계무역기구(WTO)를 출범시켰다.
95년 초에 출범한 WTO는 지난 13년 동안 국제무역질서를 정상화시키는데 많은 공을 세웠다. 학계에서도 우루과이라운드를 주관한 미국의 리더십에 찬사를 보냈다.
특히 WTO 규정에는 관세인하는 물론 분야 별 교역규칙이 정교하게 명시되어 있으며 정기적으로 회원국의 무역정책을 감사한다. 국가 간 분쟁이 일어났을 땐 흑백을 가리는 분쟁조정기구가 있어 강력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면 국제금융 분야는 어떤가? 1945년도에 출범한 IMF는 원래 회원국들이 출연한 기금으로 환율안정과 함께 예기치 못한 국제금융 질서에 어려움이 있을 때 해당국들에게 긴급융자를 해주는 것을 주목적으로 탄생했다. 세계은행은 주로 개도국 경제부흥을 도와주는 ‘개발은행’의 역할을 담당토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들 두 기관은 창설 이래 여러 번의 세계금융위기를 겪어 오면서도 한 번도 기구적 개선 노력을 기울인 적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국제 무역 분야에서 WTO가 갖고 있는 기능 즉 정기적으로 각국의 정책을 심사한다거나 부당한 행위를 저지른 국가나 기관에 대해 재제를 가하는 법원과 같은 기능이 없다.
특히 선진 각국에서 난립하고 있는 파생상품의 유효성에 대해 정론적(正論的) 평가를 내린 적도 없었다.
지금 국제금융 분야가 홍역을 겪고 있는 판에 WTO에 해당하는 세계금융기구(WFO)를 창설하는 작업을 서두르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된다. 지난주 세계지식포럼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제안한 신 국제금융질서의 아이디어도 이와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그 동안 IMF체제를 금과옥조 인양 옹호해 왔던 미국이 어떻게 움직여 주느냐 하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 필자는 낙관적으로 생각한다. 무역 분야에서 WTO를 성사시킨 것도 미국의 리더십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금융 분야에서 미국이 또 한 번의 리더십을 발휘하여 WFO 출범을 위한 대장정을 시작하도록 각국이 미국을 설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된다.
오는 11월 15일 워싱턴에서 G20정상회의가 열릴 때 이에 대해 심각한 검토가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