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운 유진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상무)
요즘 주식시장이 급락하는 날마다 빠짐 없이 등장하는 것이 외환위기 재발에 대한 소문이다. 지난주에는 IMF(국제통화기금) 외화유동성 지원에 대한 기사가 나오면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얼어붙었다. 물론 보도된 IMF 외화유동성 지원은 1997년 IMF 외환위기 때와 달리 '지원할 수 있다'는 선언적인 내용일 뿐이었다. 그나마도 오보라는 정부 발표가 있었지만 외환위기 재발에 대한 공포는 투자자 뇌리에서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있다.
필자는 1997년과 같은 외환위기 재발 가능성은 낮다는 판단이며 이같은 우려는 지나치게 부풀려져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과 1997년 외환위기 때와 가장 다른 점은 국내 외화부채와 외환보유고 내용이 매우 상세하게 공개되어 있다는 점이다. 1997년 외환정보 부재는 불확실성을 훨씬 크게 증폭시켰으며 외화 유동성 부족을 자인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반면 지난주 정부에서 발표한 '대외채무 부문별 내용 및 위험성 분석' 자료는 외환정보를 기대 이상으로 자세히 공개함으로써 억측에 의한 불안확산을 차단하고 정부 대응능력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시사했다고 평가한다.
최근 금융시장 흐름을 판단함에 있어 주식시장에서 시세 움직임보다는 채권시장에서 금리 동향을 주시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최근 내놓은 금융시장 안정책들은 대부분 자금시장 안정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이는 주가보다는 금리 움직임을 통해 먼저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주식시장은 여전히 불안한 흐름을 보여주고 있지만 글로벌 자금시장에는 일부 긍정적인 흐름이 감지되고 있다. 국제 달러수급을 나타내는 TED 스프레드(미국 3개월 국채와 리보금리 차이)가 지난 10월 13일 선진국정부가 은행간 지급보증을 발표하고 난 뒤부터 뚜렷하게 안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자국 신용위험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지만 금융기관이 신용을 창출할 수 있는 여력이 조금씩 조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국내 금융시장도 미흡하지만 이러한 조짐이 일부 나타나고 있다. 지난주 연일 폭락했던 주식시장과 달리 채권시장에서 금융채나 회사채 금리는 비록 상승하기는 했지만 급등하진 않았다. 코스피 1000선이 붕괴된 지난 금요일 국내 회사채 금리는 0.08~0.09%포인트, 금융채는 0.05%포인트 내외, 단기물인 CD와 CP는 0.02~0.03%포인트 정도 금리 상승만이 있었다. 이는 지난주 발표된 금융시장 안정책과 건설사 관련 대책이 주식시장 평가와는 달리 자금시장에선 일부 효과를 거뒀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한국은행은 27일 임시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0.75%포인트 전격 인하했다. 정부는 앞으로도 자금시장 안정화 대책을 꾸준히 내놓을 예정이다. 특히 문제가 심각한 건설사 PF(프로젝트파이낸싱) 관련대책 발표를 앞두고 있다. 결국 금액이 문제가 될 뿐 금융채 매입을 통한 자금지원 대책이 발표가 될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조치들이 자금시장 안정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따라서 아직 국내 단기금리나 신용스프레드는 상승과 확대 일로에 있지만 점차 정체 또는 완만한 하락 반전을 기대한다.
이는 주식시장에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동성 공급을 통한 자금시장 안정이 당장 경기침체에 따른 기업이익 감소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하지만 단기자금 경색에 의한 기업부도 위험은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어떤 형태로든 주가에 반영될 것이란 게 필자 생각이다.
<ⓒ'아주경제'(www.ajnews.co.kr) 무단 전재 및 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