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풀고 보증 서고"…금융시장 패닉 진정될까

2008-10-19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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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금융시장 불안 해소를 위해 대외채무에 대한 지급보증과 유동성 추가 공급이라는 카드를 빼들었다. 금융기관과 기업들의 자구 노력만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의 이번 대책으로 금융시장의 불안심리는 어느 정도 진정될 것으로 보인다.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혔던 외화 유동성 부족 현상이 완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증시 부양과 경제침체 억제를 위한 방안도 함께 마련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로벌 신용경색 위기가 진화되지 않을 경우 이번 대책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는 데다 정부가 더이상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불안하다.

또 고수익을 노리고 외화 차입에 나선 은행이나 파생상품을 산 기업이 손실을 입었다고 해서 정부가 지원해주는 것은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 달러가뭄 해갈에 올인 = 정부가 은행들의 대외채무에 대해 3년간 1000억 달러 한도로 지급보증에 나선 것은 시장의 달러 부족 현상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지급보증은 은행이 빚을 갚지 못하는 사태가 발생하면 정부가 대신 갚아주겠다는 의미다. 정부가 지급보증에 나서면 국내 은행들의 신용도가 높아져 해외 자금 차입이 수월해질 전망이다.

지난달 리먼브라더스 사태가 터진 후 국내 은행들은 해외 차입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만기가 하루인 고금리 오버나이트 거래에 의존해왔다.

은행들은 이번 조치로 해외 차입시 국내 은행이 받을 수 있는 역차별이 사라졌다고 평가했다.

양동호 국민은행 자금부장은 "호주에 이어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이 은행 간 거래에 대한 지급보증에 나선 상황에서 우리만 해주지 않으면 달러 차입이 더욱 어려워질 수 있었다"며 "이제는 해외 은행과 동등한 조건으로 차입에 나설 수 있게 됐다"고 환영했다.

수출입은행과 외환 스왑시장을 통해 300억 달러의 추가 유동성을 공급하기로 한 것도 시장에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 금융시장 다소간 안정될 듯 = 외화 유동성 부족은 최근 원·달러 환율 폭등을 초래한 근본 요인이다. 시장에 달러가 더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아지면 환율도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김두현 외환은행 차장은 "최근 환율 급등락 장세가 워낙 심해 금방 진정되지는 않겠지만 진폭을 줄이는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욱 KDI 연구위원은 "정부가 외환시장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며 "국내 은행의 차입 여건이 개선돼 외환시장이 안정되면 환율도 자연스럽게 내려갈 것"으로 내다봤다.

이와 함께 장기 적립식 펀드에 3년 이상 가입한 투자자를 대상으로 한 소득공제 및 배당소득 비과세 혜택은 더 이상의 주가 하락을 막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 우려하는 펀드 대량 환매(펀드런)을 차단하고 장기 투자자금 유입을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현행 5000만원인 예금보호 한도를 높이는 방안은 일단 보류됐다. 미국과 독일, 호주 등 일부 선진국에서 예금 보장 방안을 발표했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 조짐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데다 오히려 금융시장의 불안감만 증폭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 카드 거의 소진…모럴헤저드 우려도 = 이번 '금융시장 불안 극복방안'에는 현 시점에서 정부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이 포함돼 있다. 지급보증과 유동성 확충, 세제지원 등은 패닉 상태에 빠진 금융시장을 진정시킬 수 있다.

문제는 국내에서 아무리 완벽한 대응책을 마련하더라도 해외에서 또 다른 악재가 터져나올 경우 효과가 반감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구제금융안 추진을 놓고 마찰이 끊이지 않는데다 글로벌 경기침체 조짐을 드러내는 각종 지표들이 쏟아지고 있다.

도보은 금융감독원 금융시장팀장은 "미국과 유럽의 구제금융안이 주주권을 침해한다는 논란이 가열되면서 실효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럴 경우 국내외 은행들이 달러 확보를 위한 무한 경쟁에 돌입하면서 외화 유동성 경색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외환 거래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은 해외 은행의 자금 회수 속도를 제어할 수 있을 것"이라며 "그러나 국내외 대부분의 은행들이 해외 자산 매각 등 유동성 확보를 위한 총력전을 펼치고 있어 금융위가가 실물경제 침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 달러 부족 현상이 해소될 것으로 낙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장보형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해외 유동성 경색이 해소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며 "특히 바젤Ⅱ 도입에 따른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하락을 막기 위해 연말 해외 은행들이 자금 상환에 박차를 가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과 중소기업에 대한 도덕적 해이(모럴 헤저드) 논란도 가열될 전망이다.

장 연구위원은 "정부가 은행에 대해 지급보증에 나선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대출 확대를 위해 해외에서 무분별하게 자금을 차입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어야 하느냐"며 "은행 빚을 정부가 갚아줄 경우 국가 신용도가 하락할 수 있는 점도 문제"라고 비판했다.

김학균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은행이 대외채무 때문에 쓰러지고 중소기업이 흑자 도산하는 것은 막아야겠지만 손실을 정부가 무조건 떠 안는 게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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