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회사 미국'이 현금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신용폭풍 여파로 전세계 부러움을 한 몸에 받던 투자은행 업계가 일시에 무너지는 등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직면하면서 기업들이 가장 확실한 자산인 '총알'을 비축하고 있는 것이다.
S&P500기업 중 유틸리티업종과 금융업종을 제외한 미국 기업들이 지난 상반기 보유한 현금은 6480억달러(약 730조원)을 기록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24일 보도했다.
이같은 수치는 단기 채권을 포함해 사상 최고 수준이다. 기업들이 내다보고 있는 경제 평가와 전망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세계적인 물류업체 페덱스의 프레드 스미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상반기까지 기업 실적은 좋았다"면서 "자동차업종과 주택산업을 제외하고 대다수 기업들이 풍부한 현금흐름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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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GM을 비롯해 미국 기업들이 신용위기 사태와 함께 자금난에 빠진 가운데 현금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
대다수 미국 기업들의 현금 확보 움직임은 지난해 신용위기가 본격화되면서 일기 시작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2005년부터 S&P500 기업들의 현금 보유 규모는 계속해서 늘어났으며 6000억달러 이상을 유지했다.
기업 재무담당자들은 7000억달러에 달하는 미국 정부의 구제금융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금융시장을 예의주시하면서 신중한 입장을 지속하고 있는 상태다.
구제금융의 효과에 대한 논란이 확산되면서 기업 역시 자금 집행에 애를 먹고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체 이튼의 릭 피어론 최고재무책임자(CFO)는 레버리지 효과를 감안할 때 구제금융의 효과가 제한될 수 있다면서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위기로 인해 부실기업이 대대적으로 정리되는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스트레트가스 리서치 파트너의 제이슨 트레너트 수석 투자전략가는 "이번 금융위기로 모든 환경에서 실질적인 승자로 결정될 것"이라면서 "신용시장에 의존하지 않는 안정된 기업은 그렇지 못한 기업으로부터 시장 점유율을 빼앗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위기에 빠진 미국 최대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는 금융위기 사태로 35억 달러 규모의 크레딧라인(credit line·사전승인 대출 한도)을 추가 설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우량 기업의 대표적인 예로 거론되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휴렛팩커드(HP)는 오히려 대대적인 자사주 매입 계획을 밝혔다.
풍부한 현금을 이용해 주가를 부양하는 등 위기를 기회로 활용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한편 금융시장 상황이 악화일로를 걸으면서 단기금리가 치솟고 있다는 점은 기업들의 자금줄을 조이는 족쇄로 작용하고 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지난 2주간 15일짜리 단기 기업어음(CP) 금리는 1.27%포인트 급등했다.
실제로 돈줄이 마르면서 위기에 처한 기업들이 속출하고 있다. 지난 4월 의류 체인업체 탈보츠는 뱅크 오브 아메리카와 HSBC로부터 크레딧 라인의 연기에 실패하면서 주가가 폭락한 바 있다.
트레너트 투자전략가는 "신용시장이 악화되면서 레버리지 자산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면서 "현금이 왕이다"라고 강조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