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가입자가 보험 상품의 중복가입 여부를 보험사에 알리도록 의무화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보험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추진된다.
이에 대해 시민단체는 보험사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개악 법안이라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8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최근 보험 가입자가 여러 보험사에서 판매하는 같은 종류의 보험에 2건 이상 가입할 경우 보험사에 반드시 알리도록 하는 내용의 상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보험 가입자가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통지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알릴 경우 보험사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여러 건의 보험에 가입한 뒤 고의로 사고를 내 보험금을 타가는 사기를 막기 위한 조항으로, 단순한 실수로 통지하지 않았을 경우는 해당되지 않는다"며 "계약을 해지해도 그 이전에 발생한 보험 사고에 대한 보험금은 지급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존 보험사 간 정보 교류를 통해 얼마든지 파악 가능한 내용을 법 개정을 통해 보험계약자 개개인에게 막중한 통지 의무를 지우는 것은 모든 계약자를 잠재적 보험사기 용의자로 보는 보험사 위주의 편의주의적 발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다.
게다가 이번 법 개정이 보험사들의 보험금 미지급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도 있다.
조연행 보험소비자연맹 사무국장은 "현재 배우자가 가입한 보험계약, 주유소·백화점 등 경품으로 제공한 보험 등 한 가정에 많게는 십 여개의 보험 계약 건수가 존재하지만 무슨 보험인지, 보험금은 얼마인지도 모르는 경우가 다반사"라며 "보험 가입자가 실수로 통지를 안 했다 하더라도 언제든 계약을 해지 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고의로 알리지 않은 경우와 실수로 인한 미통지를 구분하기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보험사들이 가입자의 계약을 강제로 해약하는 등 권한을 남용할 가능성이 높다.
보험업계에서는 현재 실손형 민영 의료보험 등 일부 상품에 대해 가입 과정에서 본인 동의를 얻어 중복 가입 여부를 조회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마련하고 있지만 이 마저도 전산 처리하는데 시간이 걸려 실시간으로는 확인이 불가능하다.
한편, 개정안은 '보험사기' 규정을 신설하고 보험금의 지급여부 또는 그 산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항을 거짓으로 알리거나 숨기는 행위도 사기의 범주에 포함해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을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도 보험 가입자가 과거 병력을 알리지 않고 보험 계약을 할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지만 이를 법에 명시화한 것이다.
변해정 기자 hjpyu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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