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냐 아니면 펀더멘털적으로 어쩔 수 없는 상승이냐"
국제유가가 사상 최고 행진을 지속하고 있는 가운데 유가 상승 배경과 전망에 대한 전문가들의 주장이 분분하다.
논란의 핵심은 최근 유가 강세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주장처럼 수요에 비해 공급이 달리는 수급의 문제인가, 아니면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주장과 같이 투기 세력과 선진국의 정책 미숙에 따른 것이냐로 집중돼 있다.
전문가들은 일단 투기 세력이 국제유가 상승의 배후에 자리잡고 있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미국 의회 또한 헤지펀드를 비롯한 국제 투자자본의 움직임에 일정 수준의 규제를 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 |
||
최근 1년간 국제유가 추이 <출처: marketwatch> |
일각에서는 규제조치 강화가 자본주의시장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자유시장의 원칙에 위배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지만 규제를 강화할 경우 유가의 고공행진에 제동이 걸릴 것이라는 주장에는 별다른 반론을 펴지 않고 있다.
월가 투자은행들은 지난 한해 동안 원유상품지수를 비롯한 인덱스펀드에 대한 투자 규모가 1700억~2600억달러(약 170조~26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2002년 130억달러를 기록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6년만에 20배 이상 급증한 것이다.
상품시장에서 투자금액 역시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원유선물시장의 비상업 매수포지션 규모가 2002년 이후 10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원유선물의 비상업 매수포지션은 지난 10일 기준 122만계약을 기록했다. 이는 연초 대비 28% 늘어난 것이다. 2002년에는 15만계약에 머물렀다.
전문가들은 비상업 거래자들의 참여가 확대된다는 것은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 거래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전체 매수포지션에서 비상업 매수포지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2002년 초 20%에서 최근 40%대로 두 배 가까이 증가했다.
선물 거래에서 상업적 거래는 실수요자들의 거래가 주를 이루며 비상업적 거래는 투기 거래와 포트폴리오 투자 등을 포함한다.
현재 전세계 원유선물시장 규모는 약 5000억달러로 추정되며 장외시장(OTC) 규모는 1조5000억∼3조달러 정도다. 자본시장 중 최대 시장으로 분류되는 외환시장 규모와 맞먹는 것이다.
업계에 따르면 에너지 관련 헤지펀드 수만 최근 630여개가 넘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이중 원유 전문 헤지펀드만 3분의1에 해당하는 200여개로 추정된다.
최근 원유 급등이 투기 세력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은 바로 이같은 통계에 기인한다. 원유시장에 투기 자본이 대폭 들어오면서 유가에 거품이 끼고 있다는 것이다.
미 의회는 최근 특정 투자은행에 대한 유가 조작 가능성을 언급하는 등 규제 강화에 나설 것임을 시사하고 투기 세력 규제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 마련에 착수했다.
미 하원 에너지 상무위원회의 존 딩겔 의장은 지난 11일 에너지부의 원유시장 정보 수집력을 강화하는 법안을 제안하고 석유제품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분석하기 위해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와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 증권거래위원회(SEC) 등이 공동 조사기관을 설립하는 방안을 포함시켰다.
민주당 하원 지도부 역시 지난 23일 열린 청문회를 통해 선물 투자에 대한 필요 준비금을 높일 것을 제안했다. 이를 통해 투기 세력의 참여를 제한하고 역외 거래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CFTC는 이미 지난해 말부터 에너지 선물시장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으며 최근 금융투자자들에게 정기적인 거래내역 제출을 요구했다.
일본 역시 선물시장에서 투기세력의 움직임을 규제해야 한다는데 목소리를 함께 하고 있다. 누카가 후쿠시로 일본 재무상은 최근 열린 ASEM 재무장관회의에 참가한 자리에서 에너지시장에서 투기 자본에 대한 데이터를 갖고 있지 못하다면서 "필요한 데이터를 찾아 대책을 마련할 수 있도록 국제통화기금(IMF)에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