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위기로 허덕이고 있는 글로벌 투자은행 업계가 10조달러에 달하는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system)' 부실로 나락에 몰릴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0조달러는 한화로 약 1경(京)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그림자 금융'이 신용위기 주범...고수익 좇는 투기가 문제=미국의 온라인 경제전문매체 마켓워치는 최근 대출기관을 비롯해 증권사, 그리고 전통적인 금융권을 벗어난 불투명 금융기구의 네트워크로 구성된 그림자 금융권이 신용위기 사태와 이에 따른 당국의 압박으로 위기에 몰렸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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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모간스탠리 등 거대 투자은행들이 금융지주회사를 거부하면서 연준의 감독에서 벗어난 것이 신용위기를 키운 것으로 분석됐다> |
특히 골드만삭스와 리먼브라더스, 모간스탠리 등 월가를 대표하는 투자은행들이 당국의 엄격한 규제로 곤욕을 겪을 것으로 전망됐다.
지난 10여년간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은 금융시장 성장과 함께 경쟁적으로 그림자 금융에 매달려왔다.
그림자 금융이란 은행의 일반적인 대출 외에 고위험-고수익 채권에 집중 투자하는 구조화투자회사(SIV) 등을 통해 유동성을 창출하는 시스템을 말한다.
본질적으로 고수익을 내기 위해서는 그에 상응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금융시장이 확장할 때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지만 최근과 같은 신용위기가 닥치면 위험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전세계를 강타한 신용위기 역시 고수익을 좇는 투자은행들의 욕심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서 발생한 것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미국의 주요 은행들이 고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최근 수년에 걸쳐 SIV를 대거 발족시켰으며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여기에 연계된 자산담보부채권 등을 발행했다.
미국 부동산시장에 거품이 꺼지면서 신용위기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집값이 급락하고 SIV가 발행한 채권 수요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신용시장에 유동성이 증발한 것이다.
투자은행들이 SIV를 별도 회사로 운영해 손실이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다는 사실도 그림자 금융의 폐해로 지적됐다. 설립은행의 손익계산서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투자은행들이 2004년부터 SIV의 몸을 급격히 불리면서 SIV가 발행한 단기 채권 규모는 3년여 만에 6000억~7000억달러로 커졌고 정점을 쳤던 지난 여름엔 1조달러대를 넘어섰다.
◆그림자 금융 총 누적자산 10조달러...전통 금융과 맞먹어=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에 따르면 지난해 초 그림자 금융 시장의 총 누적자산이 10조달러에 달했다고 전했다. 이는 전통적인 금융권의 규모와 맞먹는 것이다.
연준에 따르면 SIV, 콘두이츠(conduits) 등이 기업어음(CP) 시장과 장기 자산유동화증권(ABS) 시장에서 형성한 자산이 2조2000억달러인 것으로 추산됐다.
증권 환매약정(Repo) 시장에서 2조5000억달러의 자산이 형성됐으며 거대 투자은행이 참여한 자산이 4조달러, 헤지펀드가 보유한 자산 1조8000억달러를 합쳐 10조달러를 구성하고 있다는 것이 연준의 집계다.
전문가들은 그림자 금융이 실제로는 엄청난 시장을 형성하며 제도권 금융기관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지만 규제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캘리포니아대학의 제임스 해밀턴 경제학 교수는 "그림자 금융 행위를 영위하는 기관들은 은행처럼 행동하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다"면서 "이들이 보유한 자산의 본질적인 부적합성이 신용위기의 주범"이라고 강조했다.
◆투자은행 금융지주 거부가 원인...2009년 의회 통화뒤 수익성 악화 불가피=지난 1999년 그램-리히-빌리(GLB) 법안이 통과되고 금융·산업 분리가 추진되면서 씨티그룹과 뱅크오브아메리카(BOA), JP모간체이스 등 상업은행들은 은행과 증권, 보험 사업을 묶는 하나의 금융지주회사로 통합했지만 골드만삭스와 모간스탠리, 리먼브라더스 등 투자은행들은 금융지주회사를 거부했다.
일반 상업은행 사업을 진행할 경우 연준의 감독이 더욱 확대되기 때문이다.
최근 3월 사실상 파산한 베어스턴스 역시 은행처럼 사업을 영위했지만 실제로 은행은 아니었다. 베어스턴스는 리포시장과 CP시장에서 자금을 마련했지만 연준으로부터 직접 자금을 마련할 수는 없었다. 상업은행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베어스턴스를 구제하기 위해 연준이 JP모간체이스에 긴급 자금 지원에 나선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미 의회는 내년 연준이 투자은행에 대해 전면 감독에 나설 수 있도록 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 번스타인 리서치의 브래드 힌츠 애널리스트는 "당국은 투자은행들의 무리한 레버리지를 제한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힌츠 애널리스트는 "벤처캐피탈과 사모펀드, 부동산, 상품, 헤지펀드에 대해서도 규제를 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같은 상황이 현실이 되면 투자은행 업계는 그동안 순익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던 비즈니스를 원활히 진행할 수 없게 된다.
힌츠는 "당국의 규제가 강화되면 투자은행업계의 수익성은 적게는 15.5%에서 많게는 19% 가까이 줄어들 것"이라고 밝혔다.
민태성 기자 tsmin@ajnews.co.kr
<용어: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system)>
구조화 채권 등 '고수익·고위험' 채권을 사고 파는 과정에서 새로운 유동성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으로 은행 대출을 통해 돈일 유통되는 일반적인 금융시장과 달리 투자대상의 구조가 복잡해 손익이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특징에서 '그림자(shadow)'라는 명칭으로 불린다.
구조화투자회사(SIV) 등 미국 주요 은행들의 별도 자회사가 그림자 금융 시장의 주요 참여자로 시장을 이끌고 있다.
그림자 금융은 지난해부터 본격화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시장발 글로벌 신용위기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