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은행들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돈가뭄'이 올해에도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수신 잔액이 줄어들고 있는 가운데 무리하게 대출 확대 경쟁을 벌이면서 은행권 자금이 빠르게 고갈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은 조달비용이 비싼 시장성 수신으로 부족한 대출 재원을 채우고 있어 수익성 악화까지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26일 은행권에 따르면 시중은행들의 수신 규모는 올 들어 증가세가 크게 둔화되고 있다. 은행권의 특판예금 판매가 대부분 종료된데다 지난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여파로 출렁였던 국내 증시가 최근 활기를 되찾으면서 증시로 빠져나가는 자금이 늘고 있어서다.
실제로 은행권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1월 20조원 가량 증가했다가 2월 3조1000억원, 3월 1조7000억원으로 증가폭이 급감했다. 지난달에는 6조9000억원 늘어나면서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지만 연초에 비하면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반면 증시로 유입되는 자금은 크게 늘고 있다. 주식형 수익증권으로 유입된 자금은 지난 2월 3조8000억원에서 4월 4조1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주식형 펀드 잔액도 2월 131조2000억원에서 4월 140조원으로 급증했으며 증권사 종합자산관리계좌(CMA) 잔액은 이달 들어 30조원을 돌파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은행들은 대출 확대 경쟁을 계속하고 있다. 가장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예대마진(예금금리와 대출금리 간 격차에 따른 이자수익)의 유혹을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올 들어 은행권의 기업대출 잔액은 2월 4조1000억원, 3월 6조9000억원, 4월 10조9000억원으로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을 포함한 가계대출 잔액도 3월 2조4000억원에서 4월 3조4000억원으로 한 달새 1조원이나 증가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은행권의 예대율(총대출금/총예수금)은 올해 1분기 88.0%에 달했다. 이 비율은 지난해 1분기 84.1%, 2분기 84.4%, 3분기 86.9%였다.
예대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은행으로 유입되는 돈보다 대출 등으로 빠져나가는 돈이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은행들이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경기 침체로 기업들의 자금 수요가 늘어나고 있는데다 부동산 가격도 들썩이고 있어 대출은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부족한 대출 재원을 시장성 수신 확대로 메우고 있다.
4월 말 은행권의 시장성 수신 잔액은 283조2570억원으로 정기예금 잔액(306조7653억원)에 육박하고 있다.
시장성 수신은 지난해 11월 269조4000억원에서 12월 261조9000억원으로 급감했으나 올 들어 계속 증가하고 있다.
양도성예금증서(CD)와 은행채 등을 발행해 조달하는 시장성 수신은 일반 예금보다 자금 조달비용이 비싼 만큼 시장성 수신이 증가하면 은행들은 수익성은 악화될 수 밖에 없다.
최근 시중은행장들도 간담회에서 "시장성 수신이 늘어나면 순이자마진이 줄고 유동성 리스크가 높아질 수 있다"고 우려한 바 있다.
은행권의 수익 창출 능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지난해 2.44에서 올 1분기 2.38로 악화됐다.
김영도 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주가가 올라 연 7%대의 특판예금을 다시 팔아도 자금을 끌어들이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머니무브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이상 은행들은 대출 경쟁을 자제하고 자금 관리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계적인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 앤 푸어스(S&P)도 지난 19일 보고서를 통해 국내 은행들의 신용도가 시험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S&P는 "국내 은행들의 기업대출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경기 둔화와 맞물릴 경우 은행권의 자산건전성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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