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방신기 오리콘 1위곡 작곡가 유영진

2008-03-1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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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돌, 보컬ㆍ댄스에 지적 탐구심도 갖춰"

   
 
그룹 동방신기가 16번째로 낸 싱글 '퍼플 라인(Purple Line)'이 일본 음악계의 높은 벽을 넘어 오리콘차트 1위에 올랐다. 일본을 제외한 아시아 남녀그룹 및 남성가수 최초의 록인데다 한국인 작곡가의 곡으로 정상을 차지했다는 점에서 연일 화제였다.

'퍼플 라인'을 만든 이는 1994년 '그대의 향기'란 곡으로 데뷔한 가수 출신 작곡가 유영진 씨(38). 역시 작곡가로 활동 중인 동생 유한진 씨(34)와 이 노래를 공동 작곡했고 손수 작사했다.

그는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이수만 회장과의 인연으로 현재 SM의 이사로 재직중이며 SM 소속 가수의 히트곡을 주로 썼다.

보아의 'ID:Peace B', H.O.T의 '전사의 후예', S.E.S의 '아임 유어 걸(I'm Your Girl)', 신화의 '해결사', 동방신기의 '트라이앵글(Triangle)' '라이징 선(Rising Sun)' '"오"-정.반.합.("O"-正.反.合.)' 등이 그의 손에서 태어났다.

유씨는 작곡가로 전업한 이래 언론과의 인터뷰는 연합뉴스가 처음이다. 1995년 말 2집까지 내고 난 다음 후배들의 조력자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았다. 전북 고창 출신으로 1988년 춤을 추고자 상경해 가수를 거쳐 작곡가로 성공하기까지의 스토리를 들어봤다. 2000년 결혼한 그는 슬하게 8살 된 아들을 뒀다.

--'퍼플 라인'은 일본 시장을 겨냥하기 위해 어떤 점에 주안점을 뒀나.

▲SM은 들어서 좋은 음악, 아울러 퍼포먼스를 가미해 볼거리도 제공하는 하나의 문화를 제공하고자 한다. 일본 팬들이 듣고 즐기되 '저런 곡도 있구나'란 신선한 충격을 주고 싶었다. 기대는 했지만 오리콘차트 1위는 믿기지 않았다.

그간 (일본 소속사인) 에이벡스가 제작한 동방신기의 일본곡은 더 대중적이고 멜로디컬하다. 동방신기를 널리 알리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다. 이수만 회장님이 일본 프로듀서와 논의해 '동방신기를 통해 아시아에서 SM이 보여주고 싶은 음악을 선보이겠다'는 의견을 냈고 적중했다. 동방신기와 국내서 녹음하며 빈 공간으로 느껴질 부분을 악기 소리, 믹싱 기법으로 채웠고 녹음 과정에 일본인을 참여시켜 발음도 일일이 체크했다.

--이수만 회장과의 인연은.

▲1989~90년 MBC 무용단에서 춤을 췄다. 당시 현진영과 와와로 활동하던 강원래ㆍ구준엽과 친했는데 강원래의 소개로 89년 SM 사무실에 놀러갔다. 이후 군대를 다녀왔고 군 시절 기타로 쓴 180곡의 데모를 들고 93년 3월 SM을 다시 찾아가 3일간 10곡씩 오디션을 봤다. 그때는 국내에 R&B를 추구하는 가수가 드물었고 제작 허락을 받아 첫 음반도 SM에서 나왔다.

--수많은 SM 스타들의 음악을 만들었는데 전업 작곡가로 활동하게 된 과정은.

▲음악에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초등학교 1, 2학년 때다. 오티스 레딩(Otis Redding)의 리듬 앤 블루스 곡을 듣고 흑인 가수들의 창법에 매료됐다. 노래를 하려면 곡도 쓰고 춤도 춰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용단에 들어갔다. 피아노는 어설프게 독학했고 작곡 트레이닝을 받은 적도 없다. 군대에서 180곡 정도를 쓸 때는 미디 장비도 잘 몰랐다.

--발라드 가수인데 작곡가로선 댄스 히트곡이 많다.

▲댄스곡을 쓰는 게 어렵지만 재미있다. 발라드는 그때의 감성, 떠오르는 멜로디, 코드만 있으면 되지만 댄스곡은 부를 가수, 음악계 흐름, 회사의 색깔까지 투영하므로 고려할 점이 많다. 또 춤을 추기 때문에 어떤 부분에서 임팩트를 줄지 안배해야 하므로 편곡 단계도 더 어렵다.

H.O.T의 '전사의 후예'를 쓴 이후 일단 가수 활동을 접고 SM 가수들의 곡을 썼다. 직업 댄서 출신이어서 댄스곡을 만들 때 어떻게 비트를 쪼개면 어떤 안무가 나오겠다는 무대 구상까지 가능하다는 점이 장점이었다. 스티비 원더의 '레이틀리(lately)' 같은 곡을 듣고 자라 내가 노래할 때는 R&B가 좋지만 퍼포먼스는 동방신기를 따를 수 없다.(웃음) 아이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는 지도 모르겠다.

--SM이 추구하는 음악은 어떤 것인가.

▲이 회장님과 '언젠가 중국을 넘어 세계 시장으로 영역을 확장할 때 우리의 음악은 뭐라고 얘기해야 하나'란 토론을 많이 하고 있다. 좋은 노래를 만들자는 것인데, 그 테두리에는 듣기 좋고, 보고 좋고, 현재의 흐름에도 부합되는 등 여러 뜻을 포함할 것이다. 우리의 색깔을 힙합, 댄스, R&B라고 정의할 순 없다. 이 모든 장르에 SM만의 색깔이 투영됐으니 결국 하이브리드(Hybrid) 음악 아닐까. 이수만 회장님은 10~20년 후의 성공까지 내다보고 기획하는 승부사 기질이 강하다. 우리의 음악으로 '레드 오션(Red Ocean)에서 용의 꼬리가 되는 것보다 블루 오션(Blue Ocean)에서 용의 머리가 되자'는 것이다.

--요즘의 아이돌 가수는 보컬, 댄스, 음악 삼박자를 갖춘 케이스가 많다. 그럼에도 아이돌 음악이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선입견을 어떻게 보나.

   
 
▲H.O.T 시절 팬들의 반응이 아이돌 가수를 규정한 건 아닐까. 성인들의 시선에선 팬들이 너무 소란을 피운다? 아이돌 음악에 대한 일반화된 평가절하는 분명 선입견이다. 아이돌은 시장의 흐름을 변화무쌍하고 빠르게 주도하는 하나의 장르이자 문화다. 내가 선배 가수지만 보컬과 댄스로는 아이들과 경쟁할 자신이 없을 정도다. 또 이들은 음악에 대한 지적 탐구심도 끝이 없다. 곡을 직접 써보는 아이들은 대중이 받아들일 수준이 안되면 다시 고치고 생각하는 냉정한 판단력도 지녔다.

--일부 제작자들은 '지금의 음악 환경이 저작권자들만 음악하기 좋은 세상'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작품자들이 느끼는, 음악계에서 개선돼야 할 점은 뭔가.

▲음반제작자가 바늘이고 우리는 실이다. 바늘이 가면 실이 간다. 그들이 어려우면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불법 온라인 시장 때문에 음악계가 침체를 맞았다. 저작권 단체들이 보호막이 되어 우리의 권리를 지켜줘야 한다. 그러나 이들은 저작권 침해자가 불특정 다수라는 핑계로 관리엔 소홀하면서 '신탁을 맡겼냐, 안 맡겼냐'는 자신들의 권리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니 음반제작자사들이 직접 나서는 형국이다. 작품자(작사, 작곡, 편곡자)들도 세금을 내는 사업자이니 국가 차원에서 보호 장치를 마련해줘야 한다.

--일부 작곡가들도 특정 트렌드의 상업적인 곡을 쏟아낸다는 비판을 받았는데.

▲제작자들이 히트곡 트렌드를 따르겠다고 하기 전에 작곡자들이 먼저 '이 가수에게 이 시기에 이런 색깔의 음악이 좋겠다'는 걸 제시해야 한다. 내 스스로 반성하지만 가수와 제작자들이 여러 반찬이 놓인 밥상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결국 가장 필요한 것은 실력이다.

--J-POP 시장에서 처음 성과를 거뒀는데 빌보드차트 도전 욕심도 있나.

▲빌보드차트에 도전한다, 안 한다기보다 1997년부터 미국의 작곡가, 프로듀서들과 교류하고 있다. 팝스타 쿨리오(Coolio)에게 곡을 주기도 했고, 미국 작곡가의 곡을 마더파이(Modify)해서 우리 음반에 쓰기도 했다. 개인적인 진출보다 소속 가수가 미국 진출 등을 할 경우 회사의 흐름에 발 맞춰 나갈 것이다. 트렌드적이면서 동양적인 새로운 걸 해야 한다. 지금은 동양인의 음색이 가진 카랑카랑한 주파수 대를 찾는 등 노하우를 쌓고 있다.

--가수로의 복귀 여지는 남아있나.

▲2001년에 낸 3집이 마지막이었다. 가수에 대한 미련은 아직 있다. 큰 성공이 아니라 내 음악을 쉬지 않고 한다는데 의미가 있다. 대중에게 편하게 묻어나는 노래를 하고 싶다. 노래하는 맛이 참 좋다. 올해나 내년 초까지는 다섯 곡 가량의 디지털 싱글을 낼 예정이다. 1995년 200~300명 규모의 소극장 공연 때 내 소리에 따라 바뀌는 사람들의 표정 변화를 잊을 수 없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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