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모의 미술마을 正舌] 기증과 기부, 조세 제도가 만드는 '매혹적'인 미술관
2025-01-06 09:47
컬렉션은 미술관을 상징하는 가장 중요한 자산이지만, 가장 어려운 것이 소장품수집이다. 미술관의 출발은 대부분 왕조시대의 유산을 시민혁명을 통해 확보한 미술품이나 지역 유지들이 기증한 작품이 컬렉션의 바탕이 된다. 전자의 경우 프랑스의 루브르가 대표적이며, 후자는 1850년대 이후 도시 간 설립을 두고 경쟁을 벌였던 시절 설립된 미국의 보스턴, 필라델피아, 시카고, MET, 브루클린미술관이 그것이다. 이들 미술관은 지역의 명망가들이 기증한 작품이 미술관 컬렉션의 기반이 되었다. 타 도시에 비해 많은 컬렉션을 지닌 큰 미술관을 꿈꾸면서,큰 제약을 두지 않고 기증을 받았다. 따라서 유럽 중세부터 현대까지, 동양과 미국선주민 미술, 이집트유물과 그리스 도자는 물론 인골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한 컬렉션을 자랑한다. 따라서 당시 건립된 미술관은 대부분 종합박물관의 성격을 지닌 '없는 것 없는' 백화점 스타일의 미술관이 대부분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후발 미술관은 천문학적인 가격의 고전이나 인상파 작품 등 유럽 근현대 미술품소장은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기존 컬렉터는 새로운 미술관보다 어느 정도 소장품을 갖춘 미술관에 기증하는 것을 선호했다. 따라서 1970~80년대 이후 탄생한 신생 미술관들 중 몇몇은 기존의 미술관과 다른 특정 장르나 시대 또는 지역 미술을 수집해 독특한 컬렉션을 완성해가며 차별화에 성공한 ‘영리한’ 미술관도 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1986년 과천 이전과 함께 영문명칭을 ‘동시대’란 뜻의 ‘Contemporary’로 슬그머니 바꾼 것도 가격과 희소성 때문에 수집이 어려운 ‘근대’를 버리고 ‘동시대’로 전환하려는 목적이었지만 정부소속기관이란 이유 때문에 실패했다.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의 카스텔로 디 리볼리 동시대미술관(Castello di Rivoli Museo d'Arte Contemporanea)는 20C 후반 작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해 1984년 개관한 후 불과 40년 만에 독창적이며 개성적인 컬렉션으로 세계적인 미술관이 되었다. 개관 당시 관장으로 부임한 네덜란드의 루디 푹스(Rudi Fuchs,1942~ )는 동시대 작가의 문제작을 수집하고자 했다. 개관전시<개시>(Ouverture)는 잠재적으로 컬렉션을 염두에 두고 특정 사조나 운동을 대표하는 작품과 작가의 신작 또는 최근작보다 작가의 미학적 가치를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선별했다. 그의 목표는 유럽에 기반하지만, 더 넓은 글로벌 비전을 지닌 21세기 미술관을 지향했다. 이후 미술관의 야심찬 전시와 다양한 기획을 바탕으로, 미술관의 특별한 장소성에 기반한 작품들이 속속 컬렉션에 편입되면서 유기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이후 18년간 관장으로 일한, 이다 지아넬리(Ida Giannelli,1944~ )는 독특한 마니카 룽가(Manica Lunga)를 개관하면서 개념이 분명한 소장품을 지닌 미술관으로 정착했다. 특히 20C 이탈리아 미술의 상징인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와 트랜스 아방가르드(Transavantgarde)를 수집해 컬렉션의 중심을 이루었다.
한편 이런 컬렉션이 가능했던 것은 지역저축은행재단인 ‘CRT 예술 재단’(CRT Foundation for Art)과의 협업 덕분이다. 재단은 미술관이 필요로 하는 작품을 수집하고, 미술관은 이를 보관, 관리, 전시하는 체제를 확립한 것이다. 이후 안드레아 벨리니(Andrea Bellini)와 베아트리체 메르츠(Beatrice Merz, 1960~ ), 캐롤린 크리스토프 바카르기예프(Carolyn Christov Bakargiev, 1957~ ) 관장으로 이어지면서도 미술관의 초심은 유지되었다. 현 프란체스코 마나코르다(Francesco Manacorda, 1974~ ) 관장도 이 기조는 확실하게 지켰다. 이런 독창적인 컬렉션이 유명해지자 많은 작가들의 작품기증으로 이어져 20C후반 미술을 상징하는 '매혹적인 미술관'이 되었다.
그리고 작품구입이나 미술관의 특정 사업이나 전시 등을 위해 많은 모금행사를 펼친다. 가장 많이 개최하는 모금행사는 ‘축제’란 뜻의 갈라(Gala)를 통해 마련한다. 가장 유명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의 갈라는 메트의 자금 마련을 위한 패션 이벤트다. 할리우드의 유명스타는 물론 많은 정재계 인사들이 매년 행사에 참석한다. 티켓은 1인당 약 3만달러(약 4000만 원)로 매년 500~600명의 제한된 인원이 행사에 참석해 최소 1300만~1500만 달러(약 190억~220억원)를 모금한다. 모금된 돈은 MET의 의상 부서의 소장품 구입, 조사 연구 등의 자금으로 쓰인다.
루브르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소장품 구입을 위한 자금 마련을 위해 매년 ‘루브르 갈라 디너’(LOUVRA Gala Dinner)를 포함해 여러가지 행사를 연중 개최한다. 영국박물관(British Museum)도 ‘후원자 만찬’(Patrons’ Dinner)을 열어 후원자와 교류하고 새로운 수집 및 보존 프로젝트를 위한 기금을 마련한다. 구겐하임미술관의 ‘국제 갈라’(International Gala)도 같은 목적으로 열린다. V&A도 컬렉션과 프로그램 지원을 위해 ‘V&A 여름파티’(Summer Party)와 같은 기금 모금행사를 개최한다.
모금행사는 중소규모의 미술관이나 박물관도 예외 없이 이런 행사를 정기, 부정기적으로 개최하며 때로는 기관단위로 개최하기도 하지만, 학예실의 전문 부서마다 갈라를 개최해 관련 소장품수집은 물론 운영자금을 마련한다. 이때 참석자들이 기부한 금액에 대해서는 기부에 따른 소득공제(Tax Deduction)이나 세액 공제(Tax Credit) 등의 세금공제혜택이 주어진다. 대개의 미술관 박물관은 작품수집과 운영자금 마련을 위해 정기 갈라 행사 외에도 현장 자선경매, 오락과 공연, 큐레이터와 예술가의 대화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또 미술관은 주요 기증, 기부자를 위한 특별 전시회 또는 프리뷰를 통해 신 소장품이나 특별전시에 초대해 기증에 대한 가사를 표하기도 한다. 이런 행사는 미술관의 필요와 목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새로운 후원자와 기부자를 확대하는 계기가 된다. 또 개인 소장가나 타 미술관으로부터 장기대여(Long Term Loans)를 받거나, 특정 작가와 작품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자금을 모아 필요한 작품을 주문제작(Commission Work)을 하기도 한다.
많은 선진적 미술관을 보유한 국가들은 미술관, 박물관의 작품과 국가문화유산의 수집과 보존을 위해 세금을 거두어 국고로 지원하는 저개발국가의 국가가 주도하는 고루한 방식보다 기증과 기부를 통해 세금을 공제해주는 방식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미술품이나 국가문화유산을 상속세 대신 받는 물납제(AIL, Acceptance in Lieu)도 그중 하나다. 1896년에 영국에서 도입된 후, 프랑스는 1968년 대물변제제도(La Dation en Paiement)를 도입했다. 영국은 지난 3년간 물납으로 약 1억 2000만 파운드(약 2200억원) 상당의 작품을 수납했고 프랑스의 피카소미술관, 네덜란드의 보이만스 반 뵈닝겐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은 물납한 미술품을 바탕으로 세워졌다. 네덜란드는 물납할 경우 가치의 120%를 인정해 주며 독일 등 서구의 많은 미술관들의 작품수집에 물납제가 기여하고 있다.
프랑스는 2003년 문화자선세금우대제도(Cultural Philanthropy Tax Incentives)를 도입한 후 영국이 2012년 도입한 문화기부제도(CGS,Cultural Gifts Scheme)는 미술관 작품수집에 큰 도움이 된 제도다. 프랑스와 영국의 제도는 개인과 기업의 자선, 사회적 기여를 촉진하기 위해 마련된 제도로 예술품이나 문화유산을 국가에 기부하도록 권장하는 제도다. 프랑스는 기부한 금액의 66%를 공제해주나, 과세 소득의 20%를 넘을 수 없다. 단 1000유로 이하 기부 시 세금 감면율은 75%다. 기업은 기부금의 60%를 공제받지만, 회사 수익의 0.5%를 넘을 수 없다. 영국은 개인은 기증된 물품가의 최대 30%, 기업은 20%까지 소득세, 양도소득세와 같은 자본 이득세 또는 법인세를 감면해준다. 기증대상은 회화, 판화, 서적, 원고, 공예품과 문화 및 국가적 가치가 높은 과학유물 등 모든 문화적 유산을 대상으로 한다.
멕시코는 작가들이 세금을 자신의 작품으로 낼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의 수준이 기준을 충족하는 경우에 한한다. 정부는 이렇게 세금 대신 수납한 작품을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나누어 소장하도록 한다. 세계의 기증과 기부의 중심인 미국의 조세 제도는 납세자에게 기부 또는 기증을 하도록 적극적인 제도를 운용한다. 국가가 아닌 민간의 판단과 취향에 따라 선택하고 지원하라는 취지다. 일단 기부나 기증의 경우 기업은 소득의 30%, 개인은 최대 50%까지 소득세와 양도소득세를 감면해준다. 물론 기증된 미술품이나 유물은 전문위원회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
이렇게 많은 국가가 앞 다투어 자국의 문화재 미술품은 물론 타국의 문화유산까지 세금을 공제해서라도 확보하는 이유는 국가가 문화와 예술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실천이다. 국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게 맡겨 자율적으로 문화예술에 기부함으로써 이를 통해 각자의 취향과 기호라는 자신을 드러내고 표시하는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일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다. 특히 인권의 기장 기본인 개인의 생각, 의견,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이와 함께 한 나라의 미술품 등 문화유산은 한 국가의 정체성과 역사를 형성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이를 보존해 과거와의 연속성과 연결성을 유지하는 것은 국가라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결속시키는 ‘정체성’이다. 20C 들어 미술품 등의 유산은 관광산업의 거점으로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문화적 유산, 시각적 유물은 국민이 자신의 문화와 역사, 예술, 전통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하는 한편 타 문화권의 문화와 역사, 전통을 학습함으로써 보편적인 인류애를 바탕으로 서로를 이해하도록 한다. 또 문화유산을 보호해 모든 사람이 문화생활에 참여하고 문화 자원에 접근할 수 있도록 문화권을 보장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문화유산을 보호하는 것은, 국제적인 협력과 이해를 증진해 국가 간의 유대를 강화할 수도 있다. 이것이 많은 국가가 조세 제도, 세금을 문화정책의 중요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