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준성 칼럼] '관세맨' 트럼프가 우리에게 내밀 청구서는
2025-01-07 10:01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오는 20일 2기 행정부 수장으로 취임한다. 트럼프는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 신봉자여서 매우 공격적이고도 보호주의적인 통상정책을 추진하고자 할 것이다. 당선자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관세를 포함해 어떤 수단도 불사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당선자가 관심을 갖고 있는 미국의 통상 이익은 무엇일까? 당선자의 공약이나 그간의 발언에 비추어 보면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 개선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만성적인 무역적자국이기는 하지만 최근 10년간 그 규모가 계속 증가하여 2022년에는 상품수지 적자가 1조1000억 달러를 넘어섰다. 트럼프 당선자는 무역 적자 자체를 불공정한 것으로 인식한다. 게다가 WTO 최혜국대우(MFN) 관세 체제에 따르면 미국은 광범위한 상품에 대해 다른 대다수 WTO 회원국에 비해 낮은 관세율을 부과하는데, 당선자는 이러한 비대칭적인 수입 관세율로 인해 미국이 겪는 상품수지 적자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다. 실제 대선 기간 중 트럼프 당선자는 무역수지 적자 축소와 미국 내 제조업 일자리 보호를 위해 전 세계 수입품을 대상으로 현재 부과되고 있는 품목별 관세율에 10%의 보편관세를 그리고 미국에 대해 최대 무역흑자를 기록 중인 중국산 상품에 대해서는 최대 60%의 특별관세를 추가로 부과하는 계획을 수차례 언급하였다. 그런데 이들 관세 조치는 미국이 WTO 회원국으로서 가지는 관세양허 약속이라는 기본 의무에 대한 중대한 위반일 뿐만 아니라 대내외, 특히 글로벌 경제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도 작지 않다. 따라서 당선자가 취임 후 그러한 전면적인 관세 조치를 정말로 시행할지 아니면 협상용 칩으로 사용할지는 아직 예단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최근 당선자의 내각 지명자들 및 특히 의회 의원들은 당선자가 약속한 전면 관세 대신 관세를 협상 전략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선호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멤버였던 밴 듀인은 “트럼프가 아직 대통령으로 취임도 하지 않았는데 이미 여러 국가 원수들이 찾아와 협상을 원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좋든 싫든, 사실 그가 무언가를 말하면 사람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그가 그것을 실행할 것이라는 것이 증명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를 방증하는 사례로 지난해 11월 EU 장관회의에서 유럽은 미국과의 새로운 무역 분쟁을 피하고 건설적인 관계를 유지하기로 합의하였는데 일부 장관들은 협력과 협상용 칩으로 미국에서 더 많은 액화 천연가스를 구매할 가능성을 강조했다. 다른 예로, 통상 이슈가 아님에도 지난해 11월 25일 트럼프 당선자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마약과 불법 외국인의 미국 유입을 막기 위해 캐나다와 멕시코의 모든 수입품에 25% 관세를 부과할 계획이라고 게시하자 다음 날 캐나다 부총리 크리스티아 프리랜드와 공공안전부 장관 도미닉 르블랑은 강력한 미국·캐나다 무역 관계의 이점을 강조하면서 중국에서 펜타닐이 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한 공동 노력을 강조하는 공동 성명을 발표하였다.
한편 트럼프 당선자의 협상 방식과 관련하여 주목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트럼프는 미국의 이익이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는 다자간 협상에 관심이 없고, 따라서 미국의 이익과 연관된 개별 국가와 양자 협상을 추구할 것이라는 점이다. 둘째, 트럼프의 협상 논거는 국제규범과의 합치성이 아닌 미국 이익과의 부합이 우선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와 관련해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위원장은 “트럼프가 발표된 관세 환상을 실행에 옮긴다면 EU도 이를 위해 방어적이고 규범에 기반한 보복 수단을 갖고 있다”고 공언하였는데 이는 EU가 가진 레버리지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우리는 EU와 같은 레버리지가 없는 만큼 규범 기반 대응도 준비는 하되 협력을 통한 이해 조정을 위한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다. 덴마크 외무부 장관인 라르스 뢰케 라스무센은 "트럼프가 자신의 사람들을 임명하는 것은 그에게 달려 있고 따라서 그가 누구를 임명하든 우리는 그와 협력할 것이며, 바라건대 긍정적인 방식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말한 점이 주목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통상정책 측면에서 볼 때 예측 불가능하고 격동적인 시기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데 이제 더 이상 연임이 없는 트럼프로서는 취임 초부터 자신의 정책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우리의 대응 역시 신속하게 준비해야만 할 것이다.
필자 주요 이력
△고려대 법학박사 △한국공정무역법학회 이사 △산업연구원 감사실장 △산업연구원 국제산업협력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