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타 요시히로의 한일 풍경] 이웃나라 한국의 민주주의 위기를 바라보는 일본의 눈

2024-12-31 09:15

[오가타 요시히로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일본에서는 12월을 ‘시와스(師走)’라고 부른다. ‘스님(師)’이 경을 올리기 위해 뛰어다닐(走) 정도로 바쁜 연말 풍경에서 비롯된 말인데, 지금은 한자 그대로 ‘사(師)’, 즉 선생님들이 바쁜 달로 여겨진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필자도 예외 없이 학기말에 접어들어 졸업 논문 지도를 시작으로 이래저래 정신없이 지내고 있던 2024년 12월, 한국에서 마치 거짓말처럼 들려온 ‘비상계엄’ 소식에 마음이 진정되지 않을뿐더러 필자의 분주함은 더해졌다.

한국의 많은 분들과 마찬가지로 필자도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 눈과 귀를 의심했다. 지인의 SNS를 통해 '비상계엄'이라는 단어를 마주했을 때는 ‘가짜뉴스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그 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한국 독자 여러분들 또한 잘 알 것이고, 현재까지 일본에서도 연일 한국에서 밝혀지고 있는 사실 대부분이 수시로 보도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이웃 나라 상황에 대해 일본에서도 높은 관심이 쏠리고 있으며, 앞으로의 향방에 주목하고 있다.

일본에서 이번 일에 더욱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이유 중 하나가 ‘믿기지 않는 사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경위가 차차 밝혀질수록 한국에서 또한 이번 사태가 점점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 되어가고 있다. 더군다나 일본에서는 대체로 윤석열 대통령을 훌륭한 정치인으로서 호의적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바라보며 더욱 놀랄 수밖에 없는데, 윤 대통령에 대한 일본 내 높은 평가는 한국에서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 윤 대통령은 '사상 최악'으로 불리던 2019년 이래 한·일 관계를 개선 기조로 끌고 가는 ‘용기 있는 결단’을 한 정치인이기 때문이다.

2018년 강제노동 문제를 놓고 일본 기업의 배상 책임을 요구한 한국 사법부 판결에 대해 일본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민간 소송임에도 불구하고 강한 거부감을 나타낸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삼권분립을 무시한 사법 개입을 요구하는 듯한 태도를 보였는데, 이는 1965년 성립된 한·일 관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판결이라고 해석했기 때문이다. 즉, 일본 정부 입장에서는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식민지배 책임 문제는 “모두 해결되었다”는 입장에 모순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2023년 ‘제3자 변제’라는 형태로 피해자 측에 금전적 해결을 제시하며 “모두 해결되었다”는 일본 정부 입장을 훼손하지 않는 방안을 제안했다. 이것은 일관된 견해를 변경할 필요 없이 문제를 수습할 수 있었던 일본 정부에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고 한·일 관계도 회복되기 시작했다. 한편 잘 알려져 있듯이 윤석열 정부의 이런 대응에 대해 일각에서는 '빈손 외교' '굴욕 외교'라는 강력한 비판도 있었다. 일본 정부로서는 자신들의 기존 입장을 한국 정부가 겨우 받아들였으므로 '컵의 나머지 절반'을 굳이 채울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한국 내 비판과 반대를 무릅쓰고 일본 정부 입장에 이해를 보인 윤 대통령은 '대국적인 시야를 가진 훌륭한 정치인'이 되었다. 그렇게 일본에서 호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윤 대통령이지만 이번 사태를 두고 일본 내에서도 역시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경악을 금치 못했던 만큼 일본에서도 이번 비상계엄은 시대착오적인 조치로 보일 수밖에 없다.

일본 사회가 특히 이번 사태에서 큰 관심을 보이는 부분은 향후 한·일 관계에 대한 것이다. 역시 일본 입장에서는 이웃 나라에서 벌어진 사태가 자신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것인지가 가장 궁금할 것이다. 한국 내에서는 대일 외교에 대한 영향을 운운할 단계가 아니지만, 일본에서는 비상계엄 직후부터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 즉 윤 대통령 퇴임 가능성과 차기 정권, 이재명 대통령 탄생의 가능성과 진보정권하에서 한·일 관계가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 큰 관심이었다.

한··일 관계 관련 보도를 살펴보면 일본 내 여론 대부분이 ‘친일’이냐 ‘반일’이냐는 이분법으로 한국 정치를 이해하고 있다. 즉, 보수 정권은 ‘친일’이고 진보 정권은 ‘반일’이라고 여기는 고정관념이 깊다. 더구나 여기서 말하는 ‘친일’과 ‘반일’은 대부분 일본에 대해 관대한지 아닌지에 대한 표면적인 이해에 불과하다. 이때 일본 식민지배에 가담한 ‘친일파’라는 역사용어로서 의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지극히 표면적인 해석으로 ‘친일’과 ‘반일’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심지어 최근 ‘반일’이라는 용어는 일본 정부에 대해 비판적인 국내 여론을 폄하하기 위해 쓰는 용어로도 확산되고 있다. 어쨌든 거기에는 식민지배라는 역사성은 빠져 있는 것이다.

이러한 표면적인 인식의 틀로 일본 사회가 윤 대통령 탄핵 파면 이후를 전망할 때 이재명이라는 '반일 대통령'이 등장한다고 경계하게 되는 것이다. 윤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에 상정될 무렵 일본 내에서는 이미 차기 대통령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하며 이재명의 과거 발언 등을 소개하는 등 이후 한·일 관계를 전망하는 보도가 이뤄졌다. 물론 “이재명이 꼭 ‘반일’은 아닐 수 있다”는 전문가 해설이 소개되기도 했지만 한국에 대한 일본 사회의 시선은 지극히 국소적이고 한정적이다.

한편 일본 내에서 비상계엄을 둘러싸고 한국 사회가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의지를 높이 평가하고 감탄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많은 한국 사람들이 그랬듯 일본 내에서도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린 사람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민주화의 큰 계기가 된 ‘광주’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또한 당시부터 널리 알려져 일본 시민운동에도 강한 인상을 남겼기 때문에 광주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다. 마침 2024년 여름 일본에서도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되어 일부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일본에서도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들의 강한 의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고, 상식을 벗어난 비상계엄 사태를 두고 일본 언론사들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짓’이라고 파악한 것으로 보인다.

필자는 특히 일본 공영방송인 NHK가 KBS의 국회 중계를 그대로 생방송으로 내보낸 것에 놀랐다. 또한 유튜브를 통해 한국 상황을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민영방송국도 있었고, 일본 신문기자가 국회 안에 들어가 ‘X’ 등 SNS를 통해 정보를 발신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예전과는 분명 다른 양상으로 일본 언론들이 한국 사회에 대해 높은 관심을 가지는 것이 느껴졌고,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한국 사회의 민주주의를 향한 강한 의지에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은 듯했다.

또 하나 놀란 것은 젊은 세대의 반응이었다. K-팝에 대한 관심이나 지식은 필자를 훨씬 능가하는 학생들도 평소 한국 정치에 대해서는 좀처럼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한·일 관계나 한국 정치를 전공한 필자이다 보니 학생들에게 어떻게 사회적인 관심을 갖게 할 것인가는 늘 고민이자 큰 미션이다. 그러나 이번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반응은 달랐다. 일이 벌어진 바로 다음 날 강의에서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소식을 모르는 학생이 거의 없었다.

아무래도 학생들은 인스타그램이나 틱톡과 같은 SNS를 통해 한국에서 뭔가 큰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았고, 그 외 온라인상에서 정보를 찾아서 뉴스 등을 통해 한국에서 비상계엄이 포고되었다는 마치 영화와 같은 상황을 알게 되었다. 즉, 같은 세대나 K-팝 팬끼리의 정보망을 통해 이웃 나라의 사건을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인터넷 정보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정보,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기 위해 한 발짝 더 나아갈 필요가 있겠으나 1980년 광주 때와는 다른 미디어 환경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필자 또한 새삼 깨달았다.

학생들은 “일본에서 유사한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없는 건가요” 같은 질문도 하며 한국의 비상계엄 사태에 관심을 보였다. 일본에서 비슷한 일이 발생했을 때 일본 시민들은 똑같이 행동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을 느낀 학생들도 적지 않은 것 같다. 물론 지금 일본에는 계엄령을 허용하는 헌법 규정이 없다. 한국에서 계엄령이 계속 존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사정이 자리하고 있다. 다만, 일본은 재해를 비롯한 다양한 긴급사태를 대비해 법률로 대응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런데도 헌법 개정론자들 중에는 '비상사태조항'을 새로 만들어 한국 계엄령과 같이 권력자에 대한 권한 집중을 인정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국회의원, 바바 노부유키(馬場伸幸) 일본유신회 전 대표는 비상계엄 직후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은 일본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헌법 개정으로 긴급 사태 조항을 정비해야 한다”고 SNS에 투고해 물의를 빚었다.

SNS 시대는 누구나 이웃 나라 정보를 실시간으로 알 수 있게 만들고 있다. 물론 이는 한·일 관계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민주주의의 위기가 거론되는 요즘, 한국에서 비상계엄 사태가 벌어진 것을 세계사적 맥락으로 이해하려는 시각도 존재한다. 윤 대통령과 그의 주변인들은 지난 국회의원 선거가 부정선거였다고 굳게 믿었던 것 같다. 애초부터 그들이 보는 세계 자체가 달랐던 것이다.

한편 일본 언론에서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원인으로 야당 측의 양보 없는 강경 자세를 지적하기도 하는데, 단순히 한국 사회의 갈등과 분열만이 이번 사태를 초래했다고 보는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물론 야당 측의 강한 정권 규탄은 옳지 못하다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그것으로 비상계엄 선포가 정당화될 수는 없다. 또한 윤대통령이 가졌던 음모론적 세계관이 한국 사회에서 하나의 가치로 인정되고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 비상계엄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현주소가 일본에도 정확하게 전달될 필요가 있다.

일본에서 1월은 ‘무쓰키(睦月)’라고 부른다. 새해를 맞이하여 가족들이 모이고 화목한(睦) 시간을 보낸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가 갈등과 분열을 더 이상 심화시키기보다는 화목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계기를 찾았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12월 29일에 발생한 제주항공 7C2216편 사고 희생자 분들의 명복을 빌며 깊은 애도와 위로를 전한다. 또한 부상자 분들의 빠른 쾌유를 진심으로 바란다.



필자 주요 이력

△후쿠오카대학 인문학부 동아시아지역언어학과 준교수 △연세대 정치학박사 △전 홍익대 조교수 △전 주한 일본대사관 전문조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