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송천의 디지털 산책] 선거투개표 시비…무엇이 화근인가

2025-01-05 15:49

[문송천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지금은 인터넷 인구가 55억명에 달해 있는 시대다. 전 세계 인구의 65%에 해당한다. 유아들 빼고 나면 누구나 다 쓴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시야를 지구촌 전체로 확대해보면 오지 어디를 가보더라도 이동통신망을 통해 교신 안 하는 성인이 거의 하나도 없을 정도로 보편화된 인터넷 시대 단면을 목격하게 된다. TV 이래 인터넷만 한 영향력을 발휘한 도구는 없었다. 어느 한 지역에서 촉발한 작은 변화라도 사회 전반으로 급속도로 확산되는 현상이 보편화됐다. 이는 인류 사회가 생각보다 빠르게 개방적 추세로 나가고 있다는 증거다. 이런 시대에 유권자인 국민들은 과거보다 전향적인 투명성을 원하는 동시에 과거 회귀적인 그 어떤 시도에도 거부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정치권에서는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투개표 방식에 대해선 이 시대 유권자들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미래지향적으로 가야 맞지 과거지향적으로 가는 걸 좋아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전자개표에 대해서도 일말의 문제가 있다고 느껴 그걸 기술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 대신 과거 방식, 즉 수동 개표로 간다면 그걸 환영할 부류의 유권자는 소수일 것이다.

미국을 보자.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케임브리지 아날리티카’라는 기업이 유권자 8000만명분 개인정보를 허락없이 남용한 페이스북 스캔들 사건이 터졌다. 댓글 조작을 통해 페이스북의 감정조작이 이루어져 그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소셜미디어에 대한 반감도 커졌다. 그후로 인터넷 시대에 투표의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고 미국은 IT 강국답게 모바일 투표를 도입하게 되었다. 비트코인 식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했다. 그 다음 대선, 즉 바이든 대통령을 탄생시킨 선거에서는 해외 주둔 병력을 포함한 재외국민투표에 블록체인 방식 투표를 적용했다. 또한 미국 조지아주 등 26개 주에서는 투표 회신에 획기적으로 이메일 방식까지도 허용했다. 애리조나주 등 4개 주에서는 대선 투표에서 모바일앱 투표도 도입했다. 이 앱도 투표 신뢰성을 보장하기 위해 상기 블록체인 방식을 통해 유권자 신원증명을 거쳤다.

우리의 선거 방식 현장을 보면 투표는 수동으로 개표는 자동으로 이루어진다. 투개표 방식에 불일치 현상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게 어떤 허점을 제공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에 선관위에서는 다각도로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투개표 시스템이라는 것은 허점이 있어 보여도 선관위 내부적으로 투개표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면 외부에서 투명성을 문제 삼기 쉽지 않다. 하지만 디지털 추세에 맞춰 우리도 향후 수동 투표가 아니라 전자투표로 가는 날에는 모바일앱 투표방식을 포함한 이메일 투표 도입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가는 게 발전하는 국가의 맞는 방향이라고 본다. 이번 국가 계엄 사태에서 쟁점시 됐던 선거 정보시스템에 대해 다르게 접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선거 시스템도 국가 정보시스템 중의 하나지만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 완벽하지는 않다. 인간의 오류까지 막을 수 있는 완벽을 기하려면 블록체인 방법을 쓰면 될 것이다. 블록체인은 외부는 물론 내부 조작 및 해킹까지도 사전차단 및 사후추적 가능한 기술이다. 전자투개표에도 딱 맞아떨어질 수 있다는 데 착안한 에스토니아에서는 대선 투개표에서 블록체인을 실제로 사용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선관위 전자개표기 오류 가능성에 대해 2023년 두 차례 실시한 점검에서 엇갈린 결과가 나온 것이 화근으로 작용했다고 본다. 먼저 국정원 측 주도로 했고 그 다음으로 선관위 측 단독으로 했다 (이데일리 2023년 10월 10일자). 두 점검 결과에서 상이한 점이 발견됐고, 그게 진영 별로 서로 다른 해석을 자아내는 기초가 되지 않았나 본다. 그 후로는 추가 점검이 실시된 적은 없는 것으로 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국가지도자 입장에서 부정선거 진위를 과연 가리고자 했다면 선관위 관련 규정인 헌법 제114조를 유심히 살펴봤었다면 좋았을 것이다. 그에 따르면 선관위는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의 3자 합의를 통해 구성되어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와는 완전히 독립된 헌법기관이다. 그러므로 쉽지는 않겠지만 3자 합의가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 전제 하에 선관위 시스템에 대한 통합 태스크포스를 구성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최근 국가행정망 마비사태 때 만들어졌던 태스크포스처럼 말이다. 단독 점검이 아니라 유관기관 통합적으로 보강하여 실시할 길은 있을 것 같다.

주요 행정 부처 장관 탄핵에 이어 계엄 선포 그리고 대통령 탄핵에까지 이른 이번 국정 혼란 사태는 한마디로 여야 법조계 출신들의 합작품이다. 여야 모두 법리에 강하다 보니 한쪽은 예상 외의 계엄 선포로 갔고 다른 쪽은 탄핵으로 맞섰다. 국가 요직에 법조인들이 몰리는 현상과 또한 그들을 선호하는 경향은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그런 영입이 많은 배경엔 그들의 쓰임새가 뚜렷이 있기 때문이다. 입법 등의 법률 활동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정당과 유권자의 기대가 반영된 결과라고 본다. 단일 전문 직군 중에선 가장 많은 국회의원을 배출하는 분야도 바로 법조계다. 22대 국회에서는 법조인 출신이 60명으로 5명 중 1명꼴이다. 이는 21대보다도 30% 이상 늘어난 것이다. 20대 국회도 49명으로 6명 중 1명 꼴이다. 19대 총선에서도 48명이었다. 의회에서 이러한 법조계 편중 현상은 영국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기이한 현상이다. 우리는 총 의원 수의 20%에 달하는 반면 그들은 5% 미만이다. 그렇다면 이공계 출신은 얼마나 될까. 이공계 비율은 10% 문턱을 넘지 못하며 매우 낮다. 지난 20년간 그랬다. 이공계 비율은 21대 국회에 비해 22대 국회에서 더 낮아졌다. 이공계에 인물이 사실상 넘치지만 정치에 선뜻 나서지 않는 탓도 있다. 한때 비례대표 영입 1순위를 차지해왔던 이공계란 말도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과학기술 입국을 외치지만 대선에서도 이공계가 도전했던 기록은 역대 한 명뿐이다. 그분은 과학계의 태두 격이었으나 득표율은 불과 0.1%도 안됐다. 그만큼 과학계 인재에 대해서는 국민들의 관심이 없는 게 현실이다.

특정 직업집단이 국가 요직에서 과다 대표되는 것은 출신 다양성 분포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다. 법조계는 주로 과거 사건에 대해 법리적으로 반추하는 분야라 과거지향적인 특징이 있다. 반면 예를 들면 과학계는 미래를 보는 분야다. 법조계와는 정반대 성향을 갖는다. 헌법재판소도 예외지대는 아니다. 재판관 인적구성에 있어서 선진국처럼 비법률인에게도 문호를 개방하는 다양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꾸준히 나온 점을 참고할 만하다(한겨레 2009년 7월 12일자, 연합뉴스 2024년 12월 20일자). 앞으로 유권자들은 법조계 출신에 표를 행사하기 보다는 국회의원 중 비율이 가장 떨어지는 분야인 이공계 출신 후보에게 귀중한 한 표를 행사한다면 국가 미래를 위해 좋을 것이다. 한편 국내 과학계 자구 노력도 중요하다.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단체로서는 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과총)가 있다. 그러나 주로 과학기술인의 친목 단체 성격으로서 미국의 과총과는 설립 취지부터 다르다. 미국 과총은 세계적으로 가장 저명한 학술지 중의 하나인 사이언스 저널을 출간하는 노력과 더불어 일반 대중과의 접점을 중시하며 정치권에 대한 선의의 압력 단체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그런 국가 발전을 위한 압력 단체가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법조계 출신들이 정계에서 비율이 크다는 점 하나만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회의원 대다수가 자신의 과오에 대해서도 권력을 이용하여 방어전을 지루하게 펼치는 관행은 지탄의 대상이 된다. 남에겐 관용이 없는 것도 법을 잘 알기 때문일 것이다. 법리에 강한 점이 국헌 준수와 거리가 멀다면 국가 지도층으로서는 큰 흠결이다. 논리적인 면에서 법조인에 못지않은 과학자라도 그렇게 행동할까. 크게 대비되는 점이다. 새 시대가 요구하는 이런 방향성에 대해 여야 전체에서 특히 알았으면 한다. 따라서 우리의 제1과제는 인물부터 교체하는 일이다. 여야는 보다 미래지향적인 인재들을 대거 영입하는 자세를 적극적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지난달 탄핵 의결 후 연일 쏟아지는 소식을 접하면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전혀 구별이 안된다. 아전인수 격으로 법적 권한에 대해 여야가 180도 다른 해석을 내리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는 디지털이다. 국가 행정 국방 법사 사회보장 교육도 모두 디지털로 가고 있다. 평시와 전시를 대비하기 위하여 행정망 국방망(북한 무인기) 같은 전산망이 그래서 구축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상기 국가 주요 2개 시스템이 오작동 내지 먹통 되는 사태가 발생하였다. 국가재난망 법원전산망 사회복지망 교육전산망과 같은 국가 주요 시스템에서도 최근 그런 사태가 발생했다. 이런 조직에서는 디지털 마인드를 가진 사람에게 중추 역할을 맡기는 게 중요하다. 어느 인적 시스템은 물론 어느 기계적 자동 시스템도 완벽한 것은 없다. 앞으로 전자동으로 선거 투개표가 시행되기 위해서는 시스템 업그레이드를 위해 선관위 수장의 디지털 마인드는 점검의 대상이다. 선관위 법 어느 조항에도 위원직을 특정 전문 분야에 국한하지는 않는다. 선진국에선 선관위 위원 임명 시 전문 분야 간 균형을 유지케 하는 관련 법 조항까지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른 헌법기관이나 행정부처에서도 디지털 시대에 걸맞게 전문분야 간 균형에 신경 써야 할 것이다.


문송천 필자 이력

▷카이스트 경영대학원 교수 ▷미국 일리노이대(어바나 샴페인) 전산학 박사 ▷유럽IT학회 아시아 대표이사 ▷대한적십자사 친선홍보대사 ▷카이스트·케임브리지대·에든버러대 전산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