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윤 칼럼] 윤석열의 확증편향과 과잉분노, 그리고 북한

2024-12-23 06:00

[김영윤 남북물류포럼 대표]
 

 
 
“설마 계엄이 일어나겠어?” 그러나 기우였다. 계엄이 현실화하자 우리는 모두 충격과 분노, 비통함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12·3 비상계엄이 해제된 지 3주째, 아직도 계엄 관련 뒷이야기는 분초를 다투면서 쏟아지고 있다. 무너진 둑처럼 넘쳐흐르는 뉴스를 관통하고 있는 것은 계엄이 난데없이 발동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우리를 정작 아연실색하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계엄을 선포한 이유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렇지, 그것이 어찌 ‘친위 쿠데타’를 감행할 정도였나? 지금도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다.
 
정신분석가나 심리학자가 아닌 필자와 같은 일반인의 눈에 비친 윤석열은 ‘확증편향’과 ‘과잉분노’의 화신인 것 같다. 계엄 발동과 연관된 여러 차례의 대국민 담화에서 이는 여실히 드러난다. 그의 확증편향은 지난 대선과 총선을 ‘선거 부정’으로 받아들이는 병적일 만큼 강한 집착에서 크게 도드라진다. 과잉분노는 국회의원들을 포함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들을 모두 ‘반국가 세력’으로 몰고 있는 데서 여실하다. 확증편향이라는 바탕에서 과잉분노가 표출된 것이 지난 비상계엄의 요체(要諦)다.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은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과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할 뿐 그 외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다. 이와 연결되는 것이 ‘인지부조화(cognitive dissonance)’다. 인지부조화가 심해지면 자신의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자신의 믿음을 지지하는 사람들만 주변에 두게 된다. 자신을 의심케 하는 정보는 무시하는 강한 경향성을 띤다. 자신의 행동이 곧 믿음으로 바뀌게 된다. 한번 생각해 보자. 지난 대선과 총선은 여러 각도에서 이미 검증이 끝난 사안이 아닌가. 대선은 집권 여당이 이긴 선거다. 총선 또한 여당의 집권하에 이루어진 것이다. 그럼에도 체포자 명단을 갖추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서버에 계엄군이 접근하게 한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부정선거’가 틀림없다는 병적 집착에서 비롯된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지 않은가. 거기에 주술까지도 가미된 것 같다. 망상에 빠진 무소불위 괴물의 난동. 그 외 어떤 설명이 필요한가.
 
윤석열의 확증편향과 과잉분노에는 북한이 끌어들여진다. 대한민국과는 아무런 관계도 갖지 않겠다는 북한을 계엄에 연루되도록 했다. 그런 정황 증거가 차고 넘친다. 오물 풍선에 대한 원점 타격을 지시하고, 끝내 확인을 해줄 수 없다는 평양 무인기 침투에서부터 계엄 냄새는 이미 나기 시작했다. 한국정책방송원(KTV)이 지난 10월부터 전시 생방송을 준비한 것도 이를 방증하는 단서다. 어디 그뿐인가. 정보사령부(9965부대)의 백수십 벌에 달하는 북한 인민군복의 주문·제작은 무엇을 말하는가. 북한군의 연루에 무게가 실리는 대목이다. 원점 타격은 국지전을 넘어 전면전까지도 감수해야 하는 위험천만한 행위다. 이를 모르는 바가 아닐진대 12·3 비상계엄 작전을 앞두고 국방부 장관은 오물 풍선 원점 타격을 지시했다. 북한과의 국지전을 비상계엄의 명분으로 삼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지 않다고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원점 타격을 통해 북한 도발을 유도해 내란의 시선을 차단하고, 계엄 후 상황 전개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을 바꾸려는 꼼수가 아닌가 말이다. 참으로 비열하고 위험한 짓거리다. 다행스럽게도 최일선의 우리 군의 행동은 달랐다. 원점 타격을 거부한 증언이 있었다.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지 않게 했다. 출발 전 유서를 쓰고, 채혈까지 한 계엄군이었으나 실제 작전 수행에는 주저했던 면모가 있었다. 계엄을 멈추게 한 것은 단연 시민들이다. 그들이 계엄 해제의 국회 의결을 가능하게 했다. 생각만 해도 몸서리쳐진다. 장갑차와 총부리를 몸으로 막았던 청년들이 현장에 없었더라면, 국회에서 계엄 해제가 의결되지 않았더라면, 아니 그 결의가 조금만 더 늦어졌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계엄은 우리 사회와 역사에 큰 상처를 주었다. 정치적 불안정과 정부에 대한 불신은 물론 사회적 분열은 심화했다. 국제사회에서 국가 신뢰도는 크게 저하되었으며, 한국은 대외적인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한국의 입지는 크게 낮아지고 외교무대에서 소외될 가능성마저 커졌다. 계엄 이후 ‘브래드 셔먼’ 의원이 미 하원 본회의에서 한 연설(12/7)을 보라. 그가 한국의 비상계엄 선포를 '민주주의에 대한 모욕' '민주주의와 법치를 위한 전 세계의 노력에 대한 모욕'으로 규탄하지 않았는가. 계엄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도 엄청난 부정적 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자본 유출과 환율 급등, 주가 하락은 고스란히 전 국민이 몫이 되었다.
 
우리 사회에 남긴 깊은 상처를 빨리 치료해야 한다.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첫째, 무엇보다도 탄핵 소추의 신속한 인용이 요구된다. 내란 주모자와 동참자의 죄를 단호하게 물어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탄핵을 반대하는 패거리 정치를 강력하게 규탄해야 한다. 정권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다.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되기 때문에 탄핵에 동의할 수 없다는 것이 대체 말이 되는가? 국민의 심판에 맡겨야 한다.

둘째, 국가를 위한 새로운 지도력(leadership)의 창출이 시급하다. 우리에겐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와 같은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의 대개혁으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헌법 개정을 포함한 정치개혁은 최우선 과제다. 정치적 다양성을 실현할 수 있는 정치 권력구조로 바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책은 최고 권력자에 따라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폐기되는 일만 반복될 뿐이다. 대북정책이 대표적인 분야다. 정권이 바뀌면 모든 대북정책 기조가 모두 흔들린다. 벗어나야 한다. 기후 위기, 인구소멸, 디지털 대전환 등의 글로벌 과제에 대한 해결의 비전도 새로운 리더십에 담겨야 할 것이다.

셋째, 외교의 최우선적 목표는 국익 실현이다. ‘가치 외교’가 아니다. 가치 외교는 우리의 지정학적 입지를 도외시한 것이다.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는 정책이다. 여기에서 단연코 벗어나 북방외교를 지향해야 한다. 북한은 있는 그대로 상대해야 할 것이다. 두 국가 체제에 기반을 둔 평화공존이 통일보다 먼저다. 두 국가 체제를 ‘사실상 인정’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교류·협력을 우선함으로써 통일에 접근하는 명제다. 더는 접경지역 지자체와 주민들의 안전이 ‘표현의 자유로 위협받는 일은 없어야 한다. 최근 통일부는 그동안 대북 전단 살포를 묵인하며 방조해오던 정책에서 벗어나 살포 자제를 요청하는 쪽으로 정책의 무게중심을 옮겼다. 이를 계속 담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곧 새해가 다가온다. 거짓을 일삼으며, 무지와 무능으로 무법을 자행한 비겁하고 뻔뻔한 자를 처단하고 징계하려는 시민들이 더 큰 힘을 갖는 새해가 되도록 하자. 진정한 민주주의를 향한 도도한 물결이 결단코 중단되지 않는 새로운 희망의 한 해를 우리 모두 기약하자.
 
▷독일 브레멘대학 세계경제연구소 연구원 ▷통일연구원 북한경제연구센터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