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영섭 칼럼] 실속있는 'AI 3대 강국' 도약, 세 박자 맞아야
2024-12-02 08:11
윤석열 대통령이 국가인공지능위원회를 출범시키며 대한민국을 2027년까지 AI(인공지능) 3대 강국으로 도약시키겠다고 선언한 지 두 달이 지났다. AI는 데이터, 반도체, 로봇 등 디지털 첨단기술과 함께 미국과 중국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세계 기술패권 전쟁의 핵심이다. AI는 우리 생활은 물론 산업, 사회, 국가, 인류의 미래 모습을 총체적으로 변모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도 AI가 사람을 대체할 것이냐는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 하지만 AI를 잘 쓰는 사람이 AI를 못 쓰는 사람을 대체할 것이라는 데는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결국 AI 강국이 AI 약소국을 지배하는 미래의 세계 패권을 갖게 될 것이라는 의미다. 대한민국이 강대국 반열로 부상하느냐, 약소국으로 추락하느냐가 국가적 AI 역량에 달렸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렇듯 국가 발전을 위한 핵심 과제에 대해서는 정치권에서도 여야가 입장이 다를 수 없고 정쟁 없이 국력을 모아 신속히 추진해야 한다.
국가 AI 전략을 세우는 데 있어 현 상황 분석이 먼저 필요하다. 영국 토터스 미디어의 글로벌 AI 인덱스가 국가 AI 역량을 비교할 때 인용되는 대표적 지수다. 2019년부터 매년 AI 국가 경쟁력을 비교 분석하여 발표하고 있는데 올해는 83개국이 대상이었다. 우리나라는 이 지수에서 미국, 중국, 싱가포르, 영국, 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로 평가되었다. 항목별 우리 역량 평가를 분석하여 우리의 강·약점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본 지수의 평가 항목은 3대 분야, 7대 항목으로 이루어져 있다. 첫 번째 분야인 ‘실행’에서는 인재, 인프라, 운영환경, 두 번째 분야인 ‘혁신’에서는 연구, 개발, 세 번째 분야인 ‘투자’에서는 정부 전략, 벤처투자가 평가 항목이다. 올해 평가 결과에 따르면 미국이 100점으로 압도적 선두이고 중국이 53.9점으로 많은 차이가 있는 2위로 양강 구도를 이루고 있다. 3위부터 8위까지는 싱가포르 32.3, 영국 29.9, 프랑스 28.1, 한국 27.3, 독일 26.7, 캐나다 26.4로 지수 차이가 작은 도토리 키 재기 식이어서 순위 자체에 큰 의미는 없다고 할 수 있다. 세부 항목별 분석이 중요한데, 우리나라는 ‘개발’ 3위, ‘정부전략’ 4위, ‘인프라’ 6위로 좋은 평가를 받은 반면에 AI 법·제도 등 ‘운영환경’ 35위, ‘인재’ 13위, ‘연구’ 13위, ‘벤처투자’ 12위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우리가 AI 강국으로 부상하려면 운영환경, 인재, 연구, 벤처투자 부문에서 많은 개선 노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최근 스탠퍼드대 HAI연구소가 36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올해 AI 지수도 살펴보면 미국이 70.1점으로 단연 1위를 차지하였고 중국이 40.2점으로 전년 대비 간격을 좁히며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이 지수도 역시 3위부터 8위까지 20점대에서 각축하는 양상이다. 인도와 UAE가 영국에 이어 4·5위로 뛰어올랐고 프랑스가 6위, 한국이 7위를 차지하였으며 독일, 일본, 싱가포르가 그 뒤를 이었다.
국가 AI 역량을 평가하는 두 지수에서 우리나라는 각각 6위와 7위를 차지하였고 3위부터 8위까지 국가들이 차이가 작아 크게 보면 미국, 중국에 이은 3위권으로 평가된다고 볼 수 있다.
우리 AI 역량의 현황 및 강·약점에 대한 분석을 바탕으로 AI 3대 강국 도약을 위한 목표와 전략 수립이 시급하다. 먼저 목표에 있어서 2027년까지 세계 3위 국가가 되는 것은 실현하기 어려운 도전적 목표가 아니다. 하지만 국가 평가에 사용되는 AI 지수의 순위보다 실질적 AI 경쟁력이 더욱 중요하다. 디지털 세계에서는 1위가 독식하고 2위는 현상 유지, 3위 이하는 생존이 어렵다는 것이 정설이다. 미·중 갈등에 따른 시장 분리를 감안하면 미국, 중국이 각자의 지배 시장에서 독식할 전망이어서 3위의 실질적 의미가 크지 않다. 세계를 미국, 중국, 기타 지역으로 나누어 기타 지역의 맹주가 되자는 주장도 있으나 현실을 모르는 탁상공론이다. 유럽의 프랑스, 동남아의 싱가포르, 중동의 UAE 등 자국 AI 주권을 지키겠다는 소위 ‘소버린(Sovereign) AI’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결론적으로 AI 분야에서는 현실적으로 3위가 목표지만, 우리가 강점이 있는 산업 AI 대전환 (AX) 분야에서 세계 최강을 이루면 실속 있는 AI 3대 강국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AI 3대 강국이 되려면 우리가 잘하는 ‘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AI 분야에서 3위 국가로 부상하고, 우리의 강점인 산업 AX 분야에서 ‘퍼스트 무버’ 전략으로 세계 최강 국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해야 한다.
산업 AX 분야에서 세계 최강이 되려면 먼저 그 특성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산업 AX는 AI, 데이터, 산업 도메인 지식의 3박자가 맞아야 한다. 즉, AI 역량만으로는 어렵고 산업 분야별 데이터와 도메인 지식이 함께 강해야 성공할 수 있다. 산업, 그중에서도 특히 우리 경제의 근간인 제조업의 데이터와 도메인 노하우를 기반으로 제조업 AX에서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다. 우리 제조업은 전통 제조업만이 아니라 반도체, 자동차, 배터리, 로봇, 바이오, 항공 우주 등 첨단 제조업에서 두루 세계 정상권의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타 국가 대비 차별화된 강점이다. 디지털 대전환(DX)으로 기업과 소비자의 연결이 확대되면서 업의 경계가 소멸되고 있음에 따라 제조업이 ICT, 서비스, 에너지, 콘텐츠 등 연관 산업과 융합되어 신제조업이라 불리는 거대한 융합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러한 산업의 융합 추세도 다양한 산업을 보유한 우리의 차별화된 강점이 더욱 힘을 발휘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산업 AX에서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는 이유가 많다.
실행 전략으로는 먼저 AI 도입을 통한 산업별 제품 및 서비스 혁신이다. AI가 강점을 보이는 기능으로는 사물을 구별하는 분류 기능, 전개 방향을 제시하는 예측 기능, 글이나 말, 이미지, 소리를 이해하고 만드는 생성 기능이 있다. 챗GPT 열풍으로 생성 기능이 각광을 받고 있지만 분류와 예측 기능도 활용도가 크다. 산업별 데이터와 도메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품에 AI의 세 가지 강점 기능을 추가하여 획기적 성능 개선을 이룰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클라우드 AI를 활용하는 방안과 AI 반도체를 제품에 내장하는 온디바이스 AI 방안이 공히 사용된다. 삼성전자 스마트폰에 AI 기능을 내재화하여 통신 없이도 자체적으로 자연어 소통, 통·번역 등 신기능이 가능해진 것이 온디바이스 AI의 좋은 예다. 세계적 뷰티 기업 로레알이 연초 발표한 클라우드와 통신하기 통한 개인화된 피부 진단 및 스킨케어 추천 서비스는 클라우드 AI의 예다. 막강한 클라우드 AI 역량을 바탕으로 대규모언어모델(LLM)을 무제한적으로 구사하는 미국과 전면 경쟁을 피하여 특정 산업 분야의 데이터 및 노하우에 특화된 소형 LLM(sLLM) 기반의 클라우드 AI와 제품 경쟁력 기반의 온디바이스 AI 분야에 집중하면 세계 최강이 가능하다.
두 번째 실행 전략으로 AI 도입을 통한 산업 전반의 오퍼레이션 및 업무 생산성 제고다. 쉽게 말해 시장 분석과 상품 기획, 제품 개발 및 디자인, 구매, 생산, 판매, 서비스 등 제조업 내지 산업 가치사슬 전체의 오퍼레이션 및 업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올릴 수 있다. 이 또한 다양한 산업 전반에 걸친 경쟁력에서 나오는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가 핵심 성공 요소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다. 산업 데이터 및 도메인 노하우를 바탕으로 AI의 분류, 예측, 생성 기능을 적용하여 생산성의 비약적 제고가 가능해진다. 분류 기능으로 양품과 불량품을 실시간으로 정확히 구분하여 품질 혁신을 가능케 하고, 예측 기능으로 기계장비의 상태 진단 및 이상 상황 예측을 통해 고장을 예방함으로써 장비 생산성 혁신이 가능하다. 생성 기능으로 가치사슬 전 분야에서 며칠 걸리던 일을 몇 시간 내로 처리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생산성 혁신이 기대된다.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산업 데이터 및 노하우의 구조화 및 모델링, 표준화에 주력하면 이 분야 또한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다.
주영섭 필자 주요 이력
△미국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산업공학박사 △현대오토넷 대표이사 사장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 △전 중소기업청장 △한국디지털혁신협회 회장 △서울대 공학전문대학원 특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