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K 쇼크] OECD 2배 넘는 상속세에 韓 기업들 지배구조 취약...사모펀드 공격에 무방비

2024-11-20 06:00
2·3세 전환기 경영권 분쟁에 노출
시총 2조~3조원 국내 지주사 먹잇감
사실상 60% 상속세율 인하해야

[사진=아주경제DB]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과 경영권 보호장치가 전무(全無)한 한국 상법이 국내 산업자본의 핵심 불안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창업주 때에는 견고하던 지분구조가 2·3세 경영으로 넘어가면서 지속해서 희석되어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기 쉬운 구조가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경영권 분쟁에 휘말린 오너가 회사 경영과 발전에 집중하지 못하면서 한국 전체 산업 경쟁력 악화가 우려된다. 과거에는 엘리엇, 소버린 등 해외 사모펀드(PE)가 이러한 약점을 파고들었다면 이제는 MBK파트너스를 필두로 한 국내 PE들이 실적 확대를 위해 눈독을 들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취약한 지분구조와 내부 다툼···사모펀드가 노린다

19일 재계에 따르면 지주사 체제로 운영 중인 국내 주요 기업 10곳(SK·LG·롯데·한화·GS·HD현대·CJ·한진·LS·두산) 중 7곳이 최대주주 지분율 20% 미만으로 집계됐다. 

한화, HD현대, CJ만이 최대주주 지분율이 20%를 넘어 견고하게 경영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이다. 다만 세 회사도 2세 경영에서 3세 경영으로 전환하는 과도기에 있는 만큼 승계가 완료된 뒤 최대주주 지분이 크게 희석될 가능성이 있다. 최대주주 지분율이 낮다는 것은 언제든지 경영권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는 의미다. 사실상 한국 10대 지주사 모두 돈을 앞세운 금융자본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가장 노리기 쉬운 시점은 경영권 승계가 진행 중일 때다. 실제로 삼성전자, 현대차, LG, 롯데, 한진, 영풍, 효성 등이 승계 진행 도중 PE의 공격을 받거나 PE가 경영권 분쟁에 함께했다. 해외 PE가 한국 기업을 겨냥한 대표적인 사례로 꼽히는 △소버린-SK △엘리엇-삼성 △엘리엇-현대차 분쟁도 이때 일어났다. SK그룹을 공격한 소버린은 2005년 당시 시세차익 7556억원에 배당금을 합쳐 8000억원 넘는 수익을 챙기면서 양도세를 국내에 전혀 납부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 

최대주주와 2·3대 주주 지분이 큰 차이 없거나 동업자 간 분쟁이 일어난 상황을 공략하는 사례도 잦다. 최대주주의 경영권 행사에 불만을 가진 주요 주주와 손잡고 시장에서 추가 지분을 사들여 최대주주 자리를 빼앗는 전략이다. △한진-KCGI △한국앤컴퍼니-MBK 분쟁이 대표적이다.

현재 진행형인 영풍·MBK-고려아연 분쟁도 동업자 구조의 허점을 파고든 사례다. 고려아연은 그동안 모회사 영풍을 통해 장씨 일가가 최대주주 지위를 유지하고 최씨 일가가 직접적으로 고려아연 지분을 보유하면서 경영권을 행사하는 구조였다. 다만 최씨 일가가 우호지분을 확대하면서 최대주주 지위를 확보해 고려아연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구조로 지속해서 재편됐다. 이에 장형진 영풍 고문을 필두로 한 장씨 일가가 MBK와 손잡고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가진 경영권을 확보하려 하면서 분쟁이 촉발됐다.

◆경영권 안정화 목소리 커···상속세율 낮추고 차등의결권 등 도입해야

재계에선 고려아연 분쟁은 PE들이 최대주주의 사법 리스크와 같은 명백한 실책이 없더라도 경영권 확보에 나설 수 있는 것을 보여준 사례라고 평가하고 있다. MBK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에 참여한 이유를 놓고 “기업 거버넌스가 올바르게 확립돼야 기업·주주가치가 바로 세워질 수 있다”고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최 회장은 아직 배임 등 거버넌스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고, 고려아연도 2000년 이후 99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양호한 경영 상태를 이어가고 있다. 주주배당도 지난해 2월 3년간 별도 당기순이익 기준 배당 성향 30% 이상을 유지하고 연 1회 중간배당을 실시하기로 발표하는 등 한국 기업 평균보다 높은 수준을 보였다.

시가총액이 낮은 국내 기업집단의 지주사는 언제든지 PE의 공격에 노출될 위험에 처한 셈이다. 일례로 MBK는 고려아연 공개매수와 콜옵션 행사를 위해 3조원 넘는 자금을 투입할 것으로 예측되는데 이 정도 자금이면 시총이 2조~3조원대인 국내 기업집단 지주사를 충분히 흔들 수 있다.

이에 재계에선 국가 경제를 지탱하는 산업자본이 금융자본의 일방적인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가장 시급히 요구하는 것은 지나치게 높은 상속세율을 OECD 평균 수준으로 정상화하는 것이다. 현행 법령에는 상속세 최고세율을 50%로 규정하고 있고, 상속 금액이 30억원을 넘으면서 기업 최대주주일 때는 20%를 할증해 최고세율이 사실상 60%에 달한다. OECD 평균인 26%는 물론 미국(40%), 영국(40%), 독일(30%)보다 훨씬 높다. 현행 제도하에서는 창업주 지분이 탄탄하더라도 3세 경영에 도달하면 지분 구조가 취약해질 수밖에 없고 4세 승계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학계에서도 미국 등 자본주의 선진국처럼 기업이 적대적 M&A를 방어할 수 있도록 한국도 차등의결권이나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 필) 제도를 조속히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인협회는 기존 상법에서 회사법을 별도로 분리해서 차등의결권, 신주인수선택권 등을 명문화하는 '모범회사법'을 제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