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정조준한 금감원···영풍의 '수상한 움직임'도 제대로 짚어낼까

2024-11-12 07:00
고려아연 부정공시에 혐의 집중
영풍도 논란서 자유롭지 않아
시세조종, 배임, 부정거래 등
전문가 "주장만으론 단정 못 해"

함용일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지난달 31일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에서 고려아연에 관련한 현황과 향후계획 브리핑을 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이코노믹데일리] 금융감독원이 경영권 분쟁 중인 고려아연에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 시사하면서, 분쟁의 반대편에 있는 영풍의 '수상한 움직임'도 금감원이 제대로 짚어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6일 고려아연에 유상증자 증권신고서 정정을 요구했다. 지난달 30일 고려아연 측이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유상증자 추진 경위와 과정, 청약 한도 제한에 대한 배경 등이 제대로 적혀 있지 않았다는 게 이유였다.

고려아연은 지난달 23일 자사주 공개매수를 종료하고 일주일 뒤 채무 상환을 목적으로 유상증자에 나섰고 '경영권 방어를 위해 지은 빚을 주주 돈으로 갚는다'는 시장의 비판을 받았다.

금감원은 고려아연의 깜짝 발표 다음날 자본시장 현안 관련 브리핑에서 고려아연의 자사주 공개매수 증권신고서가 허위로 작성됐을 가능성에 주목하고 관련 내용을 조목 조목 설명했다. 지난달 4~23일 자사주 공개매수를 진행한 고려아연 측이 23일부터 29일까지 5거래일 만에 유상증자를 결정하자 주관사인 미래에셋증권이 유상증자 계획을 알고도 공개매수 증권신고서에 이를 기재하지 않았다는 게 금감원 주장이었다.

이날 금감원 발표로 영풍은 뺀 채 고려아연만 금융 사정기관의 주요 조사 대상이 된 모양새가 됐다. 

11일 금감원 관계자는 "당시 브리핑이 예정돼 있었고 (고려아연 유상증자) 공시가 나오면서 얘기를 드렸을 뿐"이라며 "양측에 제기된 문제를 다 살펴보고 있고 고려아연이 유상증자를 추가 공시해 아주 중요한 사안이 하나 더 생긴 것"이라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정정 요구를 빠르게 결정한 이유에 대해서도 "시장에서 실사 시점이나 3% 이상 청약을 제한하는 등의 사안에 대해 (금감원이) 정정 요구를 할 것이라 보고 있었기 때문에, 굳이 늦게 할 필요는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시장에선 영풍도 부정행위 가능성에서 자유롭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일단 '영풍·MBK파트너스의 시세조종' 여부다. 고려아연이 진정서를 통해 제기한 부분으로 금감원은 지난달 15일부터 절차에 따라 조사하고 있다.

현재 금감원은 조사 단계인 회계심사 과정에서 재무제표를 바탕으로 회계기준에 부합했는지 여부를 심사하고 있다. 여기서 혐의점이 발견되면 회계감리 단계로 넘어가고 금감원은 감리 대상 업체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출받아 혐의점을 집중적으로 조사한다.

이 과정에서 혐의점이 명확해지면 금융위원회 소속 증권선물위원회로 사건이 넘어가고 위법 사안에 대해 과징금을 부과하거나 최종 절차인 검찰 고발 조치로 넘어간다. 검찰은 관련 사안에 대해 형사적 책임을 묻는다.

고려아연이 진정서를 통해 지적한 부분은 영풍·MBK의 공개매수 종료일인 지난달 14일 영풍 측 움직임이다. 이날 고려아연 주가는 82만원까지 올라 최고가를 경신했지만, 두 시간 뒤 77만9000원까지 떨어졌다. 당시 영풍·MBK 공개매수가인 83만원보다 주가가 높아 공개매수 실패 가능성이 높아지자 주가를 의도적으로 낮췄다는 게 고려아연 주장이다. 거래 수수료와 세금 등을 고려하면 대량 매도가 나올 수 없는 구조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실제 영풍·MBK 공개매수 주관사이자 MBK 측에 1조5785억원을 수혈한 NH투자증권은 당일 고려아연 전체 매도량의 17.9%에 이르는 주식을 팔아 치웠다. 고려아연은 특정 세력이 시세 조종 행위를 금지한 자본시장법 176조 제2항 1호를 위반했다고 봤다.

이 같은 주장에 힘을 실어 줄만한 유사 사례도 있다. 지난해 2월 '카카오의 SM엔터테인먼트 시세조종 의혹'이다. 당시 카카오는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를 두고 경영권 분쟁을 벌이던 중 대량 매수를 통해 하이브의 공개매수가(12만원) 보다 SM엔터 주가를 높였다는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김범수 카카오 경영쇄신위원장과 배재현 전 투자총괄대표가 구속됐다가 최근 보석으로 풀려나기도 했다.

고려아연 주장에 영풍 측은 "주식을 사야 하는 상황에서 팔 이유가 없다. 고려아연의 진정서 내용은 흑색선전"이라고 반박했다.

영풍의 수상한 움직임은 또 있다. 영풍·MBK의 경영협력계약(BCC)에 대한 배임 행위 여부다. BCC는 별도 법인을 설립하지 않고 이익 혹은 생산물 배분을 위한 경영협력을 목적으로 투자자들 사이에 체결된 투자형식이다. 

영풍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가져오면 MBK에 실질적 대주주 권한을 양도하는 BCC를 맺었다. 이에 고려아연은 영풍정밀을 통해 영풍·MBK의 BCC가 배임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막대한 차입금을 지고도 이를 상쇄할 실익이 없다는 것이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영풍정밀 지분율 70.3%를 보유하고 있으며 영풍정밀은 영풍 지분의 4.39%를 들고 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이 지난달 2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고려아연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다만 지난달 23일 영풍정밀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제출한 '경영협력계약 이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취소했다.
이에 영풍은 "BCC가 배임이라는 자신들(고려아연·영풍정밀) 주장이 터무니없음을 자백한 것"이라고 주장했고 영풍정밀은 "영풍이 BCC를 제출하지 않아 가처분 재판을 무력화했다"고 강조했다.

공개매수가에 대한 '말 바꾸기'도 부정거래 요건에 해당할 수 있어 지켜볼 부분이다. 강성두 영풍 사장은 지난 9월 '영풍 고려아연 주식 공개매수 설명 기자간담회'에서 공개매수가 추가 상향 계획은 없다고 밝혔지만, 지난달 4일 75만원에서 83만원으로 올렸다.

2021년 '자본시장 불공정거래 주요 제재 사례 및 투자자 유의사항'을 통해 잘못된 소문이나 타인의 잘못된 판단을 유발하는 행위가 '시장질서 교란 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한 금감원 주장에 부합하는 행위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