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그림자 규제] 석달째 美주식 주간거래 중단…증권사 "금감원 눈치 보여서"

2024-10-24 05:06
"눈밖에 나느니 다같이 하지 말자"
증권사, 암묵적 허락 기다리는 중
정교하고 일관성 있는 규제 필요

[사진=유대길 기자 dbeorlf123@ajunews.com]

국내 증권사들이 지난 8월 중단한 '미국 주식 주간 거래' 서비스 재개를 석 달째 미루고 있다. 증권사들은 당국의 재개 판단을 기다리고 있지만 정작 당국은 "거래 재개는 우리가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는 입장을 내놓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증권사들은 미국 주식 주간 거래 서비스 재개 여부를 검토하면서 금융당국의 암묵적 허락을 기다리고 있다. 금융당국은 공식적으로 이 사안에 개입하지 않고 있지만, 증권사 실무진들은 국내 증권사 간 회의나 미국주식 주간거래를 운영하는 대체거래소 블루오션의 최고경영자(CEO)가 거래재개를 위해 방한한 간담회 등에서 금감원 소속 인사가 참석한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증권사들은 금투협을 통해 블루오션 측에 재발방지 차원의 시스템 검증을 넘어 주문취소 사태 관련 소비자 보상, 사태 재발 시 보상 규정 명문화 등을 요구한 주체도 금감원이라고 알고 있다.

A증권사 관계자는 "대규모 주문 취소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블루오션의 시스템 안정성이 검증되면 재개하겠다는 것이 업계 입장이지만 금융당국이 재개해도 좋다는 판단을 내려주지 않는 이상 먼저 서비스를 재개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먼저 서비스를 시작해 당국의 눈 밖에 나느니 다같이 하지 말자는 것이 증권가 분위기"라고 말했다. 

미국 주식 주간 거래 서비스 중단 발표 당시 앞장섰던 금융투자협회도 서비스 재개와 관련해선 "권한이 없다"며 발을 빼고 있다. 당시 금투협은 협회를 중심으로 19개 증권사가 서비스 중단을 결정했으며 공동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금투협은 증권사들이 합의한 사안으로 특정 증권사가 먼저 서비스를 재개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다. 서비스 전면 재개와 관련해선 "금투협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고 선을 긋고 있다. 

주간 거래 주문 취소 사태로 피해를 봤다는 국내 투자자와 증권사 간 자율조정이 결렬되고 금감원 분쟁조정국으로 사건이 이관된 상태다. 미국 주식 주간 거래 중단에 대해 금감원은 분쟁조정을 맡았을 뿐 재개 여부는 관여하지 않겠다지만 증권사들은 "금감원이 허락하지 않아 못한다"고 말한다. 

결국 증권사, 금투협, 금감원 중 누구도 먼저 미국 주식 주간 거래 재개 입장을 꺼내들기 곤란한 상황이 이어지며 서로 눈치만 보는 '그림자 규제'로 작용하게 된 것이다. 

전문가들은 시장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까지 금융당국이 개입하면 시장의 자정 기능이 사라지고 비효율성이 커지기 때문에 자본시장 개입에 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시장 자정을 기다리지 않고 개입해 시장의 신뢰를 얻고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비판받을 수밖에 없다"며 "그냥 규제든, 그림자 규제든 정교하고 일관성 있는 규제책을 구사해야 한다"고 말했다.